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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노소영 재판 리뷰]'태평양증권' 인수자금 조달 전말은⑤손길승 진술서, 비자금 조성 방법 등 기재...노태우 비자금 유입 반박

정명섭 기자공개 2024-06-27 08:14:57

[편집자주]

재계가 '세기의 재판'에 주목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얘기다. 600억원대의 재산분할금이 항소심에서 1조38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로 커지면서 이번 소송은 개인을 넘어 재계 2위 SK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로 심화됐다. 대법원 확정 판결만 남겨둔 상황. 더벨은 논란이 되고 있는 핵심 쟁점들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6월 25일 16: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재산분할액이 1조3808억원으로 급격히 커진 배경에는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있다. 이 자금이 SK그룹의 태평양증권(현 SK증권) 인수 등에 사용돼 SK가 급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 판단이다.

반면 최 회장 측은 계열사들이 조성한 비자금으로 태평양증권 인수대금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1991년 태평양증권 인수 실무를 담당한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의 진술서에는 당시 자금 마련에 동원된 계열사와 조달 방법 등이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증권 인수자금 어떻게 마련했나

손 전 회장은 최종현 선대회장이 '동업자'라고 칭할 정도로 가까이 둔 인물이다. 1978년부터 1998년까지 약 20년간 경영기획실장을 맡으며 유공(SK이노베이션),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태평양증권 인수 등의 실무를 맡았다. 최 선대회장이 작고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SK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1991년 당시 SK의 증권사 인수는 최 선대회장의 염원이었다. 10~20년 후 그룹을 먹여살릴 포트폴리오를 고민하던 시기다. 마침 SK는 태평양증권의 인수 제의를 받았다. 태평양그룹은 당시 경영난을 겪고 있어 증권사 매각에 나섰다.

첫 걸림돌은 인수 주체였다. SK는 금융기관 여신관리규정상 '대기업집단의 비주력업체 투자제한' 조항으로 증권사 인수에 나설 수 없었다. 이에 최 선대회장은 개인 자격으로 태평양증권을 인수해야 했다.

다음 과제는 인수 자금 571억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최 선대회장 개인 재산만으로는 조달이 어려운 액수였다. 이때 동원된 게 계열사들의 비자금이다. ㈜선경과 선경합섬, 유공해운, 유공가스, 워커힐, SKC, 선경건설 등의 계열사에서 수십억원씩 자금을 마련했다. SK 계열사들이 마련한 자금은 사채시장을 거쳐 타인 명의 수표와 현금으로 만드는 과정을 수차례 거친 후 최 선대회장 명의 계좌에 입금됐다.

당시만 해도 재계에선 수출입대금 등을 결제하는 과정에서 차액을 둬 비자금을 조성하는 일이 흔했다. 건설사의 경우 비자금을 마련하기가 용이했는데 현장 공사비나 자재비, 인건비 등을 올리는 수법을 활용했다. 과거 대기업계열 건설사들이 검찰의 집중적인 수사 대상에 오르내린 이유다.

최 선대회장이 태평양증권을 인수한 후 정치권과 언론이 자금 조달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최 선대회장이 럭키증권(현 NH투자증권)을 통해 280억원 규모의 양도성예금증서(CD)와 산업금융채권을 매수했다가 바로 매도하는 거래로 자금 세탁을 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최 회장 측 "비자금 자료 남기지 않는 게 당연"

항소심 재판부는 최 선대회장의 태평양증권 인수자금이 계열사 비자금이라는 최 회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열사별 조달 내역, 수표 발행 내역 등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최 회장 측은 30여년전 일인 데다 불법적 성격이 있는 부외자금이라 당시에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법을 어겼다는 증거를 남긴다는 게 되레 상식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손 전 회장은 진술서에서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들은 출처가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했기에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노 관장 측은 이점을 파고들어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태평양증권 인수에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모친 김옥숙 여사가 가지고 있던 '선경 300억'이 적힌 메모와 선경건설 명의의 300억원 규모 약속어음(50억원으로 6장)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주장에도 맹점이 있다. 태평양증권 인수 시기는 1991년 12월인데 어음 발행 날짜는 1992년 12월이다. 설령 노태우 비자금이 SK에 흘러갔다고 해도 태평양증권 인수자금으로 쓰였다고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최 회장 측은 이 날짜를 근거로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 품위유지비 등의 금전적 지원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약정한 금액이라고 주장한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강도 높은 비자금 수사를 진행하면서 노 전 대통령 측은 약속어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 어음은 약속어음이라 선경건설에서도 부채 등 별도의 회계처리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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