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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비즘 펀드의 '외로운 싸움' [thebell note]

고은서 기자공개 2024-11-13 08:08:44

이 기사는 2024년 11월 07일 08: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여론전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만난 한 자산운용사 대표가 건넨 말이다. 국내 사모펀드와 재계가 갈등을 빚을 때마다 악역은 행동주의 펀드가 맡는다는 얘기다.

행동주의 펀드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늘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 최근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추진과정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도 마찬가지였다. 두산밥캣의 주요주주인 얼라인파트너스는 합병 자금으로 책정한 약 1조5000억원을 주주환원에 사용하라는 요구를 주주서한을 통해 공개하며 두산그룹을 압박했다.

처음엔 여론도 얼라인파트너스 편을 들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두산그룹이 합병 비율을 조정하고, 기자간담회에서 "1년 동안은 합병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자 여론은 급격히 돌아섰다.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가 무리한 것 아니냐는 인식도 확산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얼라인파트너스가 좀 더 신중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주주서한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여론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시장에선 주주서한이 공개되면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재계와 경제단체들은 연이어 보고서를 내면서 "재계가 사모펀드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자에게 "행동주의는 취지와 달리 경영권을 탐내는 탐욕스러운 수익 추구자로 변질됐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재계 입장에서는 사모펀드의 개입이 심각한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입김이 거세질수록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논리다.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에 따라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고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핵심 역량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를 '수익 추구자'로만 보는 게 오히려 편협한 시각 아닐까. 경영권을 위협한다는 재계 주장은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으로 삼는 자본주의에서는 당연한 요구일 수 있다. 재계도 자본시장이 고도화되면서 행동주의 펀드가 단순히 수익 추구를 넘어 기업 경영의 개선자로서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

VIP자산운용이나 라이프자산운용 등이 실천하고 있는 우호적 행동주의 또는 인게이지먼트 전략은 그 좋은 예다. 이들은 이사회와 대립각을 세우기 보다는 기업 경영의 동반자라는 인식으로 천천히,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보수적인 재계 입장에서는 이들의 활동이 영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들도 이제는 행동주의 펀드가 한국 기업 환경을 더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재계와 행동주의가 자본시장에서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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