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2월 24일 07:10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기자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면서 상상하지 못해본 시나리오가 펼쳐졌으니 '당혹감'이라는 말도 설명하기 충분치 않았던 감정을 그때 느꼈다.계엄 사태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올해 우리 재계와 자본시장에서도 이해관계자라면 비슷한 당혹감을 가질 수 있었던 사건들이 더러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두산 사태가 떠오른다. 두산밥캣 주주였던 테톤캐피탈은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간 합병 소식에 본인들이 보유한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판이라며 공개적으로 '작심 발언'을 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대주주의 잇속이 최우선순위인 작업이라는 점을 통감했던 그들에게 합병 소식은 '계엄'급 충격이 아니었을까.
고려아연도 올해 핫한 이슈였다. 영풍과의 분쟁 과정에서 자기주식을 끌어모았다. '주가안정과 기업가치 제고 및 주주 권익 보호'라는 명분에 2조원이 넘는 자기주식을 취득하기로 했다. 빚내서 산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어쨌든 주주 권익 상승에 기여하는 것이므로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안됐다. 그런데 곧바로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다양한 투자자가 주주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명분을 걸쳤다.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면서 고려아연은 결국 의사결정을 철회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 두산과 고려아연 사례는 외국인으로 하여금 '한국 주식을 사는 것은 바보 짓'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런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기업이 예측하지 못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이득이, 정확하게는 오너들에게 돌아갈 이익이 더 클 것이니 정면돌파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적어도 주주 설득에 성공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보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주주들은 더 이상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이런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다. 오너 한 마디의 무게가 크다지만 어쨌든 결정의 주체는 이사회다. 기업의 이사회가 오너 말 한마디에 껌뻑 죽는 이사회인가, 혹은 오너가 아닌 주주일반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사회인가. 앞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있는 집단의 의사결정자는 당연하게도 일반·대중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마땅하다. 그러려면 의사결정자는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감내할 것은 감내해야 한다. 올해는 정계나 재계나 그게 안됐다. 내년에는 정·재계와 자본시장에 상상 밖의 '계엄급 충격'이 없기를 바란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관련기사
best clicks
최신뉴스 in 피플&오피니언
-
- [thebell note]새주인 맞는 롯데렌탈의 밸류업 숙제
- [thebell note]초기투자를 향한 VC들의 진심
- 액션스퀘어에 붙은 'CEO 프리미엄'
- [thebell note]계엄 없는 2025년을 희망하며
- 'K첨단산업'이 나아갈 길
- [thebell note]'통합 대한항공'에 어울리는 격
- [피플 & 보드]효성티앤씨, 호흡기내과 의사가 합류한 배경은
- [thebell note]K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
- [thebell note]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생크션 리스크'
- [thebell note]바이오텍의 위기 대응 기본 자세
박기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 [thebell note]계엄 없는 2025년을 희망하며
- [ROE 분석]멈추지 않는 기아의 질주…2년 연속 ROE 20%대 목전
- [ROE 분석]방산 특수 한화에어로, ROE 유지 비결 '레버리지 효과'
- [캐시플로 모니터]한미반도체, 현금흐름에서 드러난 '잘 나가는 이유'
- [ROE 분석]수요 증가의 힘, 날개 단 SK하이닉스
- [ROE 분석]'44%' HD현대일렉트릭은 어떻게 ROE 왕이 됐을까
- 배터리 3사 CFO 유임, 캐즘 시기 재무구조 관리 '특명'
- [ROE 분석]올해 ROE 최고 기업은 'HD현대일렉트릭'…44% 기록
- [레버리지&커버리지 분석]코스모화학, '연결'에 숨겨진 부진…재무 활로 찾을까
- [레버리지&커버리지 분석]조용히 가라앉은 태양광…OCI·한화 희비 교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