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2월 24일 07: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차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불렸다. 한국 산업의 주력 산업으로 거듭난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바람이 담겼다. 국내외 시장조사업체의 중장기 전기차 시장 규모, 국내 기업의 높은 시장점유율, 누적 수주 1000조원 등은 K배터리의 성공을 가리키고 있었다.올해 K배터리의 상황은 어떤가. SK온은 지난 7월 비상경영을 선언했고 수일 후에 첫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배터리 혹한기가 장기화하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 등 배터리와 무관한 계열사들을 흡수합병해 인위적으로 자생력을 키웠다. 맏형 LG에너지솔루션마저 분기 적자(미국 세제혜택 제외 시)에 빠져 각종 지출을 통제하고 채용을 줄이는 긴축경영 계획을 최근 공지했다.
글로벌 고금리 기조와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탓하고 싶지만 어딘가 부족해보인다. 최대 경쟁자인 중국 배터리업계가 여전히 영향력을 키우고 있어서다. 중국 외 지역에서 K배터리의 파이를 앗아가는 모습은 더 이상 '안방 호랑이'가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로 CATL의 글로벌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2021년 13%에서 올해 9월 말 26.4%로 올라 LG에너지솔루션(25.9%)을 제쳤다.
국내 배터리 기업은 니켈 함량을 높인 하이엔드 배터리 개발에 집중한 반면 중국 기업들은 저가 전기차용 LFP 배터리 개발에 집중해왔다. 일부 국내 기업은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LFP 배터리를 언제든 내놓을 수 있다는 식으로 폄훼했다.
그러나 저가형 전기차 시장은 예상보다 빨리 도래했다. 전기차 선두 주자인 테슬라뿐 아니라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등 유수의 완성차 기업들이 LFP 배터리 채택을 공식화했다. K배터리는 뒤늦게 LFP 배터리 양산에 나섰지만 제품·가격 경쟁력, 양산 기술 등 여러 면에서 중국 기업과 격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일각에선 K배터리가 디스플레이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본다. 2000년대만 해도 한국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세계 1위였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이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금융지원 등에 업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핵심 기술 탈취 등 온갖 수를 동원하기도 했다.
결국 국내 기업들은 저가 공세에 백기를 들었다. 최근에는 한국이 기술력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시장마저 위협받고 있다. 염가 시장 장악력이 하이엔드 시장으로 확대되는 그림이다. 배터리 시장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K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일까, 제2의 디스플레이일까. 남은 3~5년 사이에 모든 게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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