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2월 31일 07: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침 출근길, 편의점에서 구매한 빵으로 허기를 달랜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점심.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 전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산다. 카페인의 힘을 빌려 업무에 집중하다 보니 벌써 저녁이다. 퇴근과 함께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소포장 야채를 구매해 맛있는 집밥을 만들어 먹는다. 한국인의 하루를 '편의점'이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수치로도 증명됐다. 이미 편의점은 2021년 대형마트를 제치고 유통업태 매출 비중 2위로 올라섰다. 올해를 기점으로는 백화점도 넘보고 있다. 올해 3분기 편의점 매출은 백화점을 추월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역성장하는 상황에서 편의점만 선방하는 건 이제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편의점이 무패 신화를 이어갈 때면 유통업계에서 '신의 한 수'로 회자되는 사례가 있다. GS그룹 오너3세인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의 선택과 집중이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이 이토록 성장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통업계에서 백화점·대형마트는 메이저, 편의점은 마이너 채널로 인식됐다. 그러다 2010년 허 부회장 체제에서 GS리테일은 백화점 점포 3개와 마트 14개를 1조4000억원 가량에 롯데쇼핑에 매각했다.
2003년부터 리테일 사업을 맡아 온 허 부회장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편의점이 메인스트림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매각금을 편의점 점포 확장에 투자했다. GS리테일이 유통업계 공룡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경영 수완을 차치하더라도 그가 훌륭한 CEO라는 평가가 뒤따르는 데는 권위 의식 없는 인생철학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허 부회장은 평소 격식 없는 태도로 직원들을 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직원들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건네며 '친근한 상사'의 이미지가 강했다는 전언이다.
실제 지난해 기자가 만난 허 부회장의 모습을 복기해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느낀다. 취재차 방문한 주주총회가 끝나자 허 부회장이 먼저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가 하면, 주총에 도입한 AI 목소리가 어땠느냐고 피드백을 요청하는 등 CEO로서 경청 자세도 인상 깊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에 삽입된 한 구절로 박수칠 때 떠난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는 그 사람의 업적이 화려했음을 방증하는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담긴 행동이기도 하다. 편의점이 성숙기에 도래한 지금, 변화하는 유통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용퇴를 결정한 허연수 부회장의 뒷모습이 빛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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