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한국물 역사 새로 쓴 '100억弗 사나이' 최성환 한국수출입은행 부행장 "시장을 거스르지 않아야 좋은 딜이죠"

한희연 기자공개 2013-01-09 10:46:41

[편집자주]

이 기사는 자본시장 전문 미디어 머니투데이 더벨이 만든 자본시장 전문매거진 thebell insight(제9호) : 2013 Korea Capital Market Outlook 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2013년 01월 09일 10: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2억5000만 달러의 글로벌본드, 역대 최대 규모의 사무라이채권, 하루에 동시 발행한 캥거루본드와 딤섬본드…. 한국수출입은행은 2012년 109억 달러어치의 해외채를 발행하며, 한국물 역사를 새로 썼다. 수은의 ‘명품 팀' 국제금융부를 이끄는 최성환 부행장을 만나봤다.


역사상 한국물(Korean Paper)이 이렇게 많이 발행된 적이 없었다. 2012년 1~3분기 누적발행액은 262억200만 달러를 상회, 2011년 연간 발행액(212억8300만 달러)을 훌쩍 뛰어넘었다. 발행조건이 이처럼 좋았던 적도 없다. 투자자를 구하러 나가는 발행사마다 역대 최저 금리를 기록할 정도였다. 사상 최장 만기의 해외채권 발행도, 회당 발행액 최대 기록도 전부 2012년에 세워졌다.

한국물 역사를 모두 다시 쓴 2012년을 이끈 발행사는 단연 한국수출입은행이다. 11월까지 총 109억 달러를 해외채 발행으로 조달하면서 주목받지 못한 딜(deal)이 전혀 없다.

수출입은행은 2012년 1월 22억5000만 달러의 글로벌본드를 통크게 발행하며 2012년 한국물 발행의 시작을 알렸다. 2009년 외국환평형기금채권(30억 달러) 이후 최대 규모 조달 기록이다. 그리고 11월15일 새벽 3년만기 글로벌본드로는 최대규모인 10억 달러를 한번에 조달하며 사실상 2012년 마지막 글로벌본드 발행을 장식했다. 게다가 2008년 이후 한국계 기관들이 깨지 못했던 발행스프레드 두 자리수 기록을 깨는 성과도 거뒀다.

그야말로 '명품 팀'이라고 할 만한 수출입은행 국제금융부을 이끄는 이가 최성환 부행장(사진)이다. 2012년 수출입은행이 만들어낸 다채로운 해외채 발행의 무지개에는, 다른 부서로 옮겼다가도 나라에 위기가 발생할 때면 꼭 국제금융부로 발령이 나는 게 징크스라면 징크스인 최 부행장의 경험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 2012년 한국물 글로벌본드 포문 열고 닫았다

2012년11월14일 오전 수출입은행. 최 부행장에서부터 국제금융부의 막내 행원까지 모두 회의실에 모였다. 3년만기 글로벌본드 발행을 준비했던 7개 IB의 DCM 담당자와 신디케이션들까지 모두 컨퍼런스 콜에 들어와서 머리를 맞대고, 이날 프라이싱에 나설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시장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10월쯤 일찌감치 발행하려 했으나, 태풍 샌디의 영향으로 국제금융시장이 열리지 않았던 데다가 미국 대선까지 겹치며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 미뤄지는 동안에도 스프레드는 슬금슬금 벌어지는 상황. 시장이 'HOT'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행을 감행할 것인지, 하루 더 기다려 볼 것인지에 대해 팽팽한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그 다음주에는 추수감사절, 이후에는 대선 등의 이슈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올해안엔 윈도우가 없었다. 14일 아니면 15일 중에 택일을 해야 했다. 거수를 해 봤다. 딱 절반이 나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발행을 감행하자는 쪽은 그 나름대로, 하루 더 기다리자는 쪽은 또 그 나름대로 논리가 타당했다. 결단력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크기조정_LSG17433
최 부행장은 미루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무엇하나 우호적인 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축적된 경험은 그를 베팅으로 이끌었다. 은행장을 포함한 경영진에 현재의 상황설명을 했다. 그의 경험을 존중해서인지 경영진에서도 그의 결심에 힘을 실어 줬다.

시장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주관사단은 이니셜 가이던스로 '미국 국채 수익률(T)+115~125bp'를 제시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최 부행장은 단호했다. 본인이 책임질테니 'T+115bp(area)'로 타이트한 이니셜 가이던스를 제시하자고 설득했다. 부담이 많이 따랐지만 준비된 자만의 자신감이 자리한 탓이다.

결국 14일 오전 'T+115bp(area)'에 3년만기 글로벌본드 어나운스가 시작됐다. 주문은 물밀듯 들어왔다. 당초 가이던스가 너무 타이트하게 나가면서 5억 달러만 해도 성공적이라고 여겼었지만 결국 발행금액은 10억 달러를 기록하게 됐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소위 큰손이라는 기관들이 너도나도 대량 주문을 넣었다. 핌코, 핀란드 연기금 등 투자자 주문북은 탄탄했다. 프라이싱 완료 이후 얼로케이션 단계에서는 행복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발행금리는 'T+98bp'로 한국물로써는 2008년 이후 처음(삼성전자 미국법인 제외)으로 두자리수를 기록하게 됐다. 1월 첫 글로벌본드를 규모면에서 압도했다면, 11월 마지막 글로벌본드는 프라이싱 면에서 다른 이슈어들의 부러움을 샀다.

최 부행장은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미 연준이 금리를 한동안 낮게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3년구간은 투자자들이 부담없이 살 수 있는 구간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최근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3년만기 채권 발행이 연달아 성공하는 것을 유심히 봐 왔고, 지속적인 투자자 컨택으로 이 구간 수요도 어느정도 파악해 과감히 베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기억에 남는 딜? 모든 딜이 자식 같아"

2012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딜을 꼽아달라는 요구에 최 부행장은 고민에 빠졌다. 가장 최근 발행한 3년만기 글로벌본드를 꼽았다가도 1월 한국물 포문을 연 22억5000만 달러의 글로벌본드를 언급하기도 한다. 글로벌본드만 꼽기엔 5월 역대 최대규모로 발행했던 사무라이채권도 눈에 밟히고, 7월18일 하루동안 두 통화시장을 오가며 동시에 발행했던 캥거루본드와 딤섬본드도 애착이 많이 간다. 급기야 "모든 딜이 자식같아 꼭 하나만을 꼽지 못하겠다"며 선택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최 부행장 입장에서도 외화자금조달 업무를 해온 이래 2012년이 가장 발행이 많았던 해이기도 하다. 다른 부서에 있다가도 주로 금융시장에 위기가 닥칠 때 국제금융부로 발령을 받아 위기를 수습한 후 시장이 좋을 때는 다른 부서로 가곤 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좋지 않을 때에는 통상 발행 규모가 크기 보다는 하나하나 어려운 조달이 많기 마련이다.

최 부행장이 처음 국제금융부 조달 담당자리로 온 것은 우리나라에 IMF 위기가 닥쳤을 때다. 국제금융부 외화조달팀장으로 2년간 있으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발행은 발행대로 어려웠다. 우리나라 최초로 외화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한 것도 이때다. 정확히 2억3500만 달러라며 숫자도 안 잊혀진다고 설명하는 그 딜이다. 당시 그 규모면 굉장히 큰 딜이었다. 최초이기 때문에 관련 법도 없어 법을 만들어가며 딜을 했다. 어느정도 위기를 수습하니 미국으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2008년 리먼 사태가 터지자 최 부행장은 국제금융부장으로 다시 불려 들어왔다. 3년임기의 워싱턴 사무소장을 2년째 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금 위기 전담반으로 뛸 차례였다. 정부로부터 외평기금 250억 달러를 위임받아 중소기업 지원용으로 시중은행에 배분에 주는 역할을 맡았다. 어느정도 위기가 잠잠해지자 2010년 기획부로 배치됐다.

그리고 2011년7월 세번재로 국제금융부장으로 오게 됐다. 이때부터 수출입은행의 화려한 조달 레코드가 시작된다. 2011년 하반기 글로벌본드와 스위스프랑화 채권에 이어 2012년 들어 3분기까지 글로벌본드, 우리다시본드, 링기트채권, 사무라이본드, 캥거루본드, 딤섬본드, 타이바트채권 등 다채로운 채권 발행을 성사시켰다.

2012년9월28일 부행장으로 승진했지만, 국제금융부장을 겸하고 있어 하는 일에 있어 아직 승진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그다. 달라진 것이라곤 이전에 같은 층에서 부원들과 함께 하던 일을 하려면, 몇층 더 내려가야 한다는 것 정도. 원화자금 조달 또한 함께 맡고 있어 이부분에 신경쓸 일이 늘어났다는 것도 또 다른 변화다.

clip20121126165828

1년간 사모까지 합쳐 110억 달러 가량 조달한 최 부행장. 휴가와 공휴일을 뺀다면 한달에 10억 달러 꼴로 조달한 셈이다. 국내 여느 조달 담당자보다 해외채권 발행에 밀접한 그에게 '좋은 딜'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좋은 딜을 위한 원칙으로 '중도'를 내세운다. 이슈어는 금리에 대해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도, 지나치게 안일해서도 안된다는 얘기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프라이싱을 할 수 있는 힘. 중도는 곧 시장을 거스르지 않는 자세와도 연결된다. '중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그가 강조하는 필수요소는 바로 사전준비다.

최 부행장은 "정확한 프라이싱을 잡아내는 능력은 사전 준비 작업의 양에 비례한다"며 "남들이 보기에는 전광석화처럼 12시간만에 끝낸 딜 같겠지만, 이는 표면적으로 어나운스 후부터의 시간이고, 이를 위해서는 6개월 이상의 사전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2013년 달러·비달러 조달 비중 균형 이룰 것"

2013년에도 최 부행장의 바쁜 행보는 이미 예정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출입은행은 2013년 100억 달러 가량을 해외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2012년보다는 규모가 다소 적어졌지만 차이는 크지 않다.

크기조정_LSG17437
최 부행장은 "2013년 발행시장 상황은 2012년과 비슷할 것"이라며 "현재 있는 유동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풍부한 유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어 펀딩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2년 수출입은행의 달러와 비달러 조달 비중은 5:5 정도다. 비달러 비중을 의도적으로 높였다기 보다는 상황에 맞춰 유리한 시장에서 발행을 시도하다보니 저절로 균형을 이뤘다. 2013년도 이와 비슷한 비중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금융시장 규제 이슈로 달러화 비중이 좀더 높아질 여지는 있다.

최 부행장은 "비달러화로 조달을 할 경우 스왑을 해야 하는데 2013년 바젤3 도입이 본격화 된다면 거래상대방의 스왑리스크에 대해 자본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기 때문에 조달 코스트가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며 "이럴 경우 달러대비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2012년 수출입은행 입장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냉각된 조달시장을 뚫어 다른 기관들의 조달에 벤치마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노력이 있어서인지 한해동안 한국물 시장은 그 어느때보다도 풍성했다. 이제 어느정도 조달 측면에서 위기를 벗어나 정상 궤도로 올라왔다는 것을 최 부행장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는 "2012년 첫 딜인 22억5000만 달러의 글로벌 본드는 사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임한 측면이 크다"며 "시장이 어느정도 정상화 된 만큼 2013년에는 좀더 드라이하지만 노멀하게, 보다 정상적인 조달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