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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현대상선은 머스크가 될 수 없나

강종구 기자공개 2013-05-10 15:14:53

이 기사는 2013년 05월 10일 15: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반드시 내려올 때가 있다. 높이 올라가면 깊이 내려오고 빨리 올라가면 급히 내려오게 마련이다. 인생도 그렇고 경기(經氣)도 그렇다. 탄탄대로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낭떠러지는 예고 없이 나타난다. 사람이나 기업이나 장수(長壽)의 비결은 잘 나갈 때 몸조심하는 것이다.

2002년에서 20008년, 세계 해운업이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대만의 해운사 에버그린은 신규 선박 발주에 나서지 않았다. 글로벌 주요 해운사들이 경쟁적으로 선복량을 늘리는 와중에 혼자 가만히 있으니 세계 2위였던 순위는 5위까지 밀려났다. 그래도 에버그린은 참았다. 세계 해운시장은 이미 물동량에 비해 공급과잉 상태에 있었고 경쟁적인 발주 탓에 선가는 너무 높았다. 경기가 좋아 망정이지 갑자기 불황이 닥치면 곡 소리 날 게 뻔하다는 걸 에버그린은 알고 있었다.

2010년 4월 에버그린의 창융파 회장은 신규 컨테이너선을 무려 100척에 달하는 사상 최대 수준의 발주 계획을 발표한다. 전대미문의 서브프라임 위기로 다른 글로벌 선사들이 충격적인 적자의 늪에 빠지고 고가에 주문한 선박 대금을 치르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호황기 때 넉넉한 유동성을 쌓아놓은 에버그린이 싼 값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의 공격적인 투자는 늘 불황 중 이루어졌다. 1980년대초와 1980년대 중반 두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선대 증강이 대표적인 사례다. 머스크는 해운경기가 최악이었던 지난 2011년에도 18,000TEU급의 세계 최대 규모 컨테이너선인 Tripe-E 발주에 나섰다. 6월말 우선 4척을 대우조선해양에서 인도받을 예정이다. Tripe-E 선박은 향후 해운업계에서 머스크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비장의 무기로 규모의 경제, 에너지 효율, 친환경성을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황기에 비해 가격은 30~40%나 저렴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머스크의 재무정책이다. 1904년 2,200톤의 중고 증기선 한 척으로 시작한 머스크가 숱한 위기를 버텨내고 세계 해운업계의 지배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재무정책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모든 리스크관리 프로그램은 금융시장의 예상치 못한 급변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당연히 재무 가이드라인이 매우 까다롭다. 갑자기 낭떠러지 같은 위기를 만나더라도 재무지표를 튼실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특히 충분한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것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경기가 좋을 때는 물론이고 경기가 나빠져 현금흐름이 부족하면 자산매각과 투자회수를 통해서라도 충분한 현금흐름이 창출(strong cash generation through the cycle)될 수 있도록 한다. 유동성은 곧 회사의 목숨 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금성 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역사적으로 0.5~1.5배에 불과하고 지난해 말 보유 유동성은 136억 달러에 이른다. 차입금의 평균 만기는 5년에 달한다. 외부 자금조달의 25% 정도는 회사채를 이용한다. 이런 정도 기업의 회사채라면 일단 자금의 미스매치로 인한 비명횡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이들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다 시선을 우리나라 해운사에 돌리게 되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다른 글로벌 건설사들이 업황 침체 속에서도 최소한의 흑자와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여전히 금융위기 이후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경기 좋을 때 모든 자금을 총동원해 고가의 선박을 대거 주문했다가 금융위기가 찾아오자 여지없이 빚더미에 나 앉고 유동성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마치 축구에서 기세 좋게 전원 공격에 나섰다가 역습 한 방에 지리멸렬 무너진 모습이다. 이를 두고 한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는 영업레버리지와 재무레버리지를 과도하게 높였다가 업황이 침체되면서 함정에 빠졌다는 뜻으로 '이중레버리지의 덫'에 걸렸다고 표현했다.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작년말 현재 697%, 현대상선이 799%로 명색이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글로벌 선사에, 국내 신용등급 A를 받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높다. 업계에서는 해운업계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주요 글로벌 선사들의 부채비율로 볼 때 곧이 들리지 않는다. 머스크는 89%, 에버그린은 68%, CSCL 86%, Hapag-Lloyd 120%, MOL은 112% 등 일본의 NYK(266%)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다른 업종보다 낮은 편이다. 해운업이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재무정책을 보수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황을 준비하지 못한 국내 해운사들의 현금흐름은 바닥을 드러냈다. 차입금은 대규모 만기가 단기에 몰려 있다. 돌연사의 위험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선박금융의 재무약정마저 위반해 회사의 사활을 은행에 맡겨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이렇게 위기관리 능력이 없는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에 적합한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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