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2월 24일 07시52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보안은 꽤 계륵처럼 다뤄지는 분야입니다. 눈에 띄지 않아 돈만 먹고 할 일 없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투자나 조직 개편, 개선에서도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죠. 문제는 그렇게 중요성을 간과하다 보면 언젠가 큰 낭패를 본다는 점입니다"올해 초 국내 기업에서 퇴사한 보안전문가가 식사자리에서 건넨 말이다. 당시 이 내용을 IT·통신 등 분야에만 국한해 받아들였는데 이는 편협한 생각이었다. 보안을 계륵처럼 여긴 풍조와 이에 비롯된 문제는 제조업을 포함한 국내 산업 전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대표 사례가 삼성전자 반도체 장비 자회사 세메스의 기술 유출 사건이다. 다만 이를 삼성전자, 세메스만의 문제나 소수의 일탈로 국한하고 싶지는 않다. 내부 보안, 인식 점검도 필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기술 유출 마음을 못 먹게 하는' 심리·사회적 보안과 허들도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심리·사회적 보안은 엄벌주의에서 담보된다. 하지만 국내는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앞선 세메스 사건도 재판부가 "유출 자료 일부는 국가 핵심기술로 가벼운 처벌 시 기술 개발 동기 약화와 기술력 탈취를 방지하기 어렵다"고 판시했으나 내려진 선고는 엄벌과 거리가 먼 징역 4년이 최고다.
사실 이를 온전히 재판부의 탓으로 전가하기도 어렵다. 국가 핵심기술 해외 유출의 처벌은 △3년 이상 유기징역·15억원 이하 벌금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해외 유출 목적의 침해 시) 정도다. 기술 보안 강조와 모순되게 형량이 너무 낮다. 이마저 판결 시 지식재산권범죄 중 영업비밀침해행위 양형 기준에 밀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일각에선 엄벌주의 대신 내부 처우를 개선하는 당근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회와 업계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국내 완성차 장비 기업 한 임원은 "최소 수억원을 챙길 수 있는데 처우 개선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법적 처벌 강화를 함께 논의한다면 모를까, 둘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런 온정주의적 세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점차 지양되는 추세다. 지난해 홍석준 의원(국민의 힘) 등이 양형기준을 높인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가장 최근인 10일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하는 것에 간첩죄를 적용하는 형법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응보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국내 산업에 미칠 파장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한 소부장 기업 등을 생각하면 정부와 법률이 일벌백계로 기술 보안을 지킬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새해부터는 국가핵심기술 유출에 붙은 솜방망이 처벌이란 꼬리표가 이제 그만 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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