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3월 30일 08시0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자연스럽게 주변 테이블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 때가 있다. 요즈음 그런 경우가 부쩍 늘었다. 귀를 조금만 기울여도 은행에 대한 얘기가 거의 매번 들려온다.고금리 상황과 맞물려 은행을 힐난하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처음 대출 받을 때는 2%대였던 금리가 최근에는 7%를 넘어 8%까지 왔다갔다 한다’는 내용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대화를 계속 엿듣다 보면 결국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대목이 나온다. 거의 모든 대화의 끝은 은행원들에 대한 푸념 섞인 욕설이다. ‘하는 것도 없는 X들이, 능력도 없는 X들이 돈은 앉아서 몇 억씩 X번다’ 정도의 뉘앙스다.
‘약탈적 금융’이란 말이 은행권을 짓누른다.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금리가 오르면서 은행은 대출금리를 높였다. 물론 최종 금리를 결정짓는 가산금리도 일정부분 오른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불어난 대출금리에 차주들의 한숨은 커졌다.
하지만 최근 은행에 대한 비난은 비단 차주의 한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시민들의 분노는 은행을 넘어 은행원 개개인에까지 전이됐다. 은행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유행처럼 번진 은행에 대한 비난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정부와 금융 당국 차원에서 꾸준하게 이슈화한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에 대한 요구 과정에서 불거진 오류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와 당국은 처음엔 은행 CEO와 사외이사 등에 대한 지배구조 문제를 언급했다. 이후론 은행의 수익성이 너무 높다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외국인 주주들에 대한 고배당 논란도 일었다. 연초를 지나며 경영공시가 나오고 은행 경영진의 급여가 공개되자 연봉과 성과급이 너무 많다는 지적을 내놨다.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강조하는 사이 은행에 대한 신뢰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은행업은 시스템이다. 신뢰와 신용을 기반으로 자금을 중개하며 경제가 순환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규제산업인 은행업은 정부와 당국과 밀접하게 소통한다. 정권의 성향과 권력자의 이해도에 따라 매번 변신을 거듭한다. 어떤 위기 상황에선 경제 주체와 함께 넘어져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처지였다. 또 어떤 위기 때는 각종 금융지원에 앞장서 경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하기도 했다.
그 어떤 때도 은행은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의도가 있던, 그렇지 않던 은행에 대한 부정 인식이 확산하면 결국 경제 전반에 걸쳐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대학에 다닐 때 유행처럼 번진 말이 있었다. ‘문송합니다’였다. 문과에 진학해 취업이 어려운 상황 자체가 죄송하다는 뜻이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냥 시대에 밀려 잘못한 사람이 됐었다. 요즘 같으면 ‘은행원이어서 죄송합니다’란, ‘은송합니다’란 말이 유행처럼 번질 것 같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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