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의 뉴 플라이트]항로 '도장깨기' 나선 민간외교관④항로 개척사…영토확장 역할은 선대회장, 세밀화 전략 펼치는 조원태 회장
허인혜 기자공개 2023-04-12 07:30:09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07일 09: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73년 보잉사의 점보 비행기를 들여온 조중훈 전 회장은 들떠있었다. 태평양을 건널 수 있는 점보기가 들어오며 전세계 일일생활권의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항로의 한계 탓에 진짜 세계일주행 비행기를 띄울 수는 없었다. 갈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에 가까웠다.지금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나라로 아르헨티나가 꼽힌다. 인천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날아가려면 경유가 필수적인데 약 26시간이 소요된다. 순수 비행시간만 따지면 약 23시간40분이 걸린다. 조원태 회장 시대에는 정말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하루 내에 도착한다는 의미다.
◇새 보잉기 타고 항로 '도장깨기' 나선 민간외교관
과거부터 지금까지 항공업을 꿈으로 이야기하는 회장님들은 언제나 줄을 잇는다. 하늘을 나는 사업의 낭만뿐 아니라 외교사에 굵직한 선을 그은 기업인들 중 항공사 경영진이 많다는 점도 한 몫을 했다. 항공사 회장님이 당도하는 나라의 호텔에는 우리나라 국기가 걸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뼈있는 농담인 것은 그때문이다.
'항로 이탈'은 역설적으로 항공사의 영원한 꿈이다. 정해진 노선 밖으로 항로를 계속해 개척해나가야 해서다. 항로 확대는 항공사의 새 수익원이다. 한진가(家)가 신기종을 계속해 들여온 배경에는 노선 개척의 꿈이 자리를 잡고 있다.
대한항공의 초창기 항로는 단순했다. 미주노선은 알래스카 경유, 시애틀로 향하는 북태평양 노선이 다였다. 동남아나 중동도 미진했다. 아시아 노선은 일부 있었으나 사실상 글로벌 항공사라고 지칭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베트남 노선은 1969년까지도 확보하지 못했다.
1969년은 대한항공이 민영화된 해다. 그때부터 조중훈 전 회장은 항로 확대의 목표를 안고 중장거리 항공기 도입과 외교 전략을 동시에 폈다. 이때 대한항공은 프로펠러기 중심의 비행기를 제트기로 재편하는 데 한창이었다. 조중훈 전 회장이 일단 신형 YS-11기 8대를 줄지어 도입해 국내선에 적용시켰고, 이 항공기 확대가 사이공 노선 확보의 근간이 된다.
1969년 베트남 노선은 파병이며 근로자 수송 수요가 높았는데 정식 절차로 항로를 개척하기는 시간이 부족했다. 조중훈 전 회장이 베트남 정부에 '착륙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전해 이뤘다.
아무리 국적 항공사 대표더라도 민간인에 불과했던 그가 국가간 항로 개척에 성공한 이유는 베트남에 잔뼈가 굵었기 때문이다. 트럭으로 군화물을 날랐던 그가 미군 고위장성들과 친해졌고 그들이 베트남에 파병을 가며 길이 트였다는 전언이다. 베트남에 군수화물을 직접 옮겨왔던 공로도 포함됐다.
1972년에는 서울발 도쿄와 호놀룰루, LA 노선이 개척됐다. 1971년 도쿄와 LA행 화물기가 시작이었다. 보잉707, 보잉720을 들여와 국제선에 활용했다.
조중훈 전 회장이 기를 쓰고 들여왔던 보잉은 대한항공의 발을 넓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3년 우리나라의 첫 점보기 보잉747이 대한항공의 품에 안기며 파리 노선을 텄다. 보잉747 기종은 이후 대한항공이 런던, 암스테르담, 아부다비, 바그다드 등의 유럽과 중동발 항로를 개척할 때도 동행했다.
◇독특하고 고급스럽게…새 항로 튼 조원태
사실상 신규 항로 개척은 조양호 전 회장 시절까지 거의 완성됐다. 현재 대한항공은 공동운항편을 포함해 미주와 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역과 중동, 아프리카 등 전세계에 비행기를 띄운다. 1980~1990년대 유럽 항로 개척을 시작으로 노선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이다. 1990년대 중국과 동남아, 대양주 노선을 확보하며 국가는 대부분 공략했다.
이후 대한항공의 노선 확대 기조는 무조건 넓히기보다 고급화, 세밀화 전략으로 재편됐다. 수요가 적더라도 공급이 필요한 도시나 여태껏 국내 항공사가 취항하지 못한 쪽으로 눈을 돌렸다. 2000년대 이후 조원태 회장이 주축으로 신규 취항한 노선은 인천발 타슈켄트, 텔아비브, 시즈오카, 뉴델리 등이었다.
타슈켄트는 중앙아시아의 거점으로, 텔아비브는 성지순례 관광객 등을 노렸다. 시즈오카는 시즈오카 공항 설립과 함께 온천 관광객을 주 타깃으로 삼았다. 새 항로에는 B777-200 기종 등 최신형 비행기가 주축이 됐다.
조 회장의 화물 중심 노선 활용도 눈여겨볼 만한 전략이다. 조 회장은 2020년 팬데믹으로 여객사업이 침체되자 화물 쪽으로 눈을 돌려 전방위적 노선을 잘 썼다. 조 회장이 코로나19 이후 임원회의에 참석해 '쉬고 있는 여객기들의 화물칸을 활용해 화물수요에 대처하자'는 취지의 아이디어를 냈고 역대 최대 실적 달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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