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논란으로 본 금융 지배구조]경영 효율이냐, 사유화냐…CEO 장기 집권 '찬반 팽팽'⑬"검증된 리더에게 충분한 시간 줘야" vs "공공재에 제왕적 리더십 부적합"
최필우 기자공개 2023-04-21 07:09:48
[편집자주]
공공성을 앞세워 정부와 금융 당국은 금융지주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올바른 지배구조를 갖추고 정해진 제도 안에서 정도경영하라는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CEO 교체는 물론 이사회에도 칼날을 겨눠 위기감이 높아졌다. 금융지주사들은 태동 이후 가장 큰 지배구조 격변 앞에 서 있다. 더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융지주사들의 지배구조 현주소를 살피고 정부와 금융당국이 문제삼는 지점들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14일 13: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은행권 제도와 관행 개선을 위해 칼은 빼든 금융 당국은 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하고 있다. 회장 선임 절차와 사외이사 제도에 대한 비판 모두 CEO 장기 집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 공공재 성격을 가진 금융기관 수장의 장기 집권이 쉽게 담보돼선 안된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금융권에선 업계 사정을 모르는 소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배구조 개선,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 글로벌 진출 등 굵직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단기간에 완수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영 효율을 높이려면 검증된 리더의 연임을 막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 김정태 120개월·KB 윤종규 102개월, 전·현직 '최장수' CEO
더벨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 역대 회장들의 재임 기간을 취합한 결과 13명의 전직 회장이 평균 51.5개월 간 근무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직 회장 4명은 평균 30개월 동안 재임했다. 올해 2명, 지난해 1명의 회장이 새로 취임해 전직 회장들에 비해 평균 재임 기간이 짧았다.
역대 최장수 CEO는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이다. 김정태 전 회장은 2012년 3월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고 2022년 3월 퇴임해 총 120개월 간 근무했다. 현직 최장수 CEO는 윤종규 KB금융 회장이다. 윤 회장은 2014년 11월 취임했고 오는 1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102개월을 근무했고 임기를 채울 시 108개월 간 재임하게 된다.
전임 회장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가장 긴 곳은 하나금융이다. 최장수인 김정태 전 회장 외에도 전임자인 김승유 전 회장이 75개월 간 재임한 장수 CEO였다. 평균 97.5개월 간 재직한 셈이다. 신한금융이 하나금융의 뒤를 이었다. 라응찬 전 회장(98개월), 한동우 전 회장(73개월), 조용병 전 회장(72개월)이 평균 81개월 동안 CEO를 맡았다.
장수 CEO들은 각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김정태 전 회장은 외환은행과 하나은행과의 통합을 마무리하고 수년에 걸쳐 조직 통합을 이끌었다. 하나은행은 앞서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과 합병하며 외형을 키운 경험이 있으나 외환은행과의 통합은 현 4대 금융 지위에 오르게 해준 사건으로 무게감이 달랐다. 김정태 전 회장의 강한 리더십이 있어 양행 통합으로 시너지가 날 수 있었다.
윤 회장은 KB금융의 지배구조와 조직 문화 대수술에 성공한 CEO로 평가된다. 그의 취임 전만 해도 전임 회장 다수가 중도 사퇴하거나 해임되고 내분이 발생하는 등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윤 회장 체제에서 선진적인 사외이사 선임과 CEO 승계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LIG손해보험, 현대증권, 푸르덴셜생명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리딩뱅크로 발돋움 한 것도 합리적인 경영 체계가 있어 가능했다.
한 금융권 사외이사는 "장기 재직 CEO 다수가 제왕적이라는 비판을 들었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금융그룹 성장을 견인한 것도 사실"이라며 "첫 임기에서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입증한 CEO들이 경영 효율을 높이는 차원에서 오랜 기간 그룹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손태승·신한 조용병 연임 '제동', 당국 '권력 사유화' 견제
최근 금융 당국은 금융지주 CEO들의 장기 집권에 제동을 걸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을 포기시킨 게 대표적이다. 손 전 회장은 2018년 12월 취임해 51개월을 재직했다. 손 전 회장은 지주사 전환과 종합금융그룹 재건 초석을 놓은 리더로 평가된다. 마지막까지 다올인베스트먼트(현 우리투자파트너스) 인수를 성사시켰으나 당국 압박에 지난 1월 연임을 포기했다.
연임이 유력시되던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도 지난해 12월 용퇴를 결정했다. 조 전 회장은 72개월의 재직 기간 동안 아시아신탁(현 신한자산신탁), 오렌지라이프(현 신한라이프), 네오플럭스(현 신한벤처투자),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현 신한EZ손해보험)을 인수하며 리딩뱅크 경쟁을 이끌었다.
CEO 장기 집권에 부정적인 금융 당국 기조가 영향을 미쳤다. 금융 당국은 소유분산 기업인 금융지주를 특정인이 오랜 기간 경영하는 데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장기 재직시 CEO에 우호적인 세력이 권한을 독점하게 되고 경영진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지주 회장에게 제왕적 권한이 허용되면 지주 임원이나 계열사 대표 자리에도 CEO 측근들이 오랜 기간 기용돼 변화가 더뎌지는 측면이 있다"며 "권력 사유화까진 아니더라도 다른 구성원들의 기회가 제한되는 부작용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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