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지 ESS 산업 분석]ESS, 이차전지 기업들이 주목하는 '비즈니스 모델'①태양광·풍력 에너지 저장 수단으로 각광...각국 자체 육성방안 마련
정명섭 기자공개 2023-05-26 07:28:03
[편집자주]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 가속화 등으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ESS가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시장 확대와 맞물려 에너지 신산업 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벨은 글로벌 ESS 산업 동향을 살펴보고 국내 기업들의 기회 요인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23일 16: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류 역사상 산업혁명의 변천을 보면 주요 단계마다 에너지의 변화가 있었다. 인간의 노동력이 석탄과 전기 에너지로 대체되면서 증기기관 기반의 기계화(1차 산업혁명)와 대량생산(2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3차 산업혁명인 지식정보 혁명을 지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에너지 공급과 소비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일단 한번 생성된 전기는 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다른 에너지로 변환돼 사라진다. 전기를 저장하고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흔히 '배터리'로 불리는 이차전지는 이같은 제약을 해소했다. 이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웨어러블 디바이스, 드론, 전기차 같은 혁신 제품의 등장을 불러왔다.
이차전지를 대규모 설비로 확장한 것이 에너지저장시스템(ESS, Energy Storage System)다. 이는 전력 사용량이 적은 시간에 전기를 저장했다가 사용량이 많은 시간에 공급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같은 재생에너지의 발전 변동성을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전력 거래와 재난 관리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ESS는 '에너지 혁명'을 이끌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한국과 미국과 유럽 등 각국 정부는 ESS 산업 육성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전지 기술 발전·신재생 에너지 확대 맞물려 '급성장'
ESS 산업의 역사는 1959년 프랑스 물리학자 가스통 플랑테가 세계 최초의 납축전지를 개발한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납축전지는 에너지 효율성이 낮고 가격이 높아 활용도가 떨어졌다.
1970년대 리튬이온 전지의 발명은 대안이 됐다. 이는 리튬이온이 양극재와 음극재 사이를 이동하면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전지다. 납축전지 대비 에너지 밀도가 5배 이상 높고 무게가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충전 시간과 수명 면에서도 월등했다. 리튬이온 전지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차전지 형태인 이유다. ESS에 사용되는 전지도 리튬 이온 전지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ESS 산업은 이차전지 기술 발전과 함께 매년 성장해왔다. 개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건 2010년대 들어서다.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과 풍력, 조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한 전력 피크와 대규모 정전 사고가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실제로 2012년 인도에서 폭염으로 인한 과부하로 약 7억명의 인구가 48시간 이상 전력 공급을 받지 못했다. 2016년 호주에서는 악천후와 토네이도에 의해 송전선이 고장 나면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2020년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최악의 폭염으로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정전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 인접 주들도 폭염으로 전력 사용량이 폭증해 끌어올 수 있는 잉여전력이 없었다. 이는 ESS 도입으로 전력 공급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됐다.
2021년 이후에 ESS 산업 성장은 더 빨라졌다. 국제 사회는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탄소중립'을 내세웠다. 각국 정부는 앞다퉈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는 계획을 내놓았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흐름 속에 국내외 주요 기업들도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 줄이는 데 동참했다.
최근 2년 사이에 ESS 시장 확대를 주도한 건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 차질이다. 작년 2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천연가스 가격 폭등을 불러왔다. 러시아는 전 세계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국가다. 한국가스공사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액화천연가스(LNG) 최저 가격과 최대 가격은 80배 이상이었다. 특히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유럽 지역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는 ESS 구축으로 이어졌다. 유럽에너지저장협회(EASE) 추산 결과 지난해 유럽 지역에서 가정용과 산업용 ESS에 탑재된 이차전지 용량은 누적 10GW다. 1년 사이에 두 배나 늘었다. 2030년에는 이보다 5배 넘는 57GW가 신규 설치될 것으로 전망된다. 근래 대규모 정전사태를 경험한 미국에서도 ESS 설치 규모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1년 약 3.6GW였던 ESS 설치 규모는 지난해 5GW 수준으로 올랐고 올해는 9GW 이상으로 커질 전망이다. 매년 두 배에 달하는 성장 속도다.
ESS 산업이 안정적 전력망 구축에 영향을 미치다보니 각국 정부는 자체적으로 지원책을 마련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작년 8월 도입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ESS 설비 투자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안을 포함하고 있다.
독일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현재 50% 수준에서 2030년까지 65%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신재생 에너지와 ESS는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정부 주도의 ESS 설치 확대가 유력하다. 영국은 대규모 ESS 프로젝트의 필수조건을 완화하는 등의 보급 확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올해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ESS TF를 꾸려 산업 육성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차전지 기업들 호재...전기차 시장 점유율 그대로 갈듯
글로벌 ESS 시장 확대는 국내 이차전지 업계에 호재다. ESS는 크게 전력변환장치(PCS)와 전지관리시스템(BMS), 운영시스템(EMS), 이차전지로 구성된다. 여기에 들어가는 이차전지는 전기차용 이차전지 시장과 유사하게 과점 구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인 전력 시장 특성상 검증된 기업의 이차전지를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이차전지 시장점유율을 보면 상위 6개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85%에 달했다. 전기차 이차전지가 폐전지로 전환하면 ESS용으로 재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도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CATL이나 BYD 등 중국 기업들이 국내 기업 대비 앞서고 있는 리튬인산철(LFP)전지가 ESS 시장에서 3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점이다. LFP전지는 삼원계 기반의 이차전지 대비 무겁고 에너지 밀도가 낮아 그동안 전기차용으로 사용되는 비중이 낮았다.
그러나 ESS는 상대적으로 에너지 밀도의 중요성이 낮다. LFP전지가 전기차용 이차전지 대비 생산비용이 낮고 화재 위험이 적다는 점도 ESS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요인이다. 수명이 긴 것도 LFP전지의 장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이차전지 셀 제조사들은 ESS용 전지 개발과 설비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 북미 지역에 3조원을 들여 ESS용 LFP전지 생산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IRA 도입 이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ESS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투자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SK온은 연내 북미 지역에 ESS용 전지 생산 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SDI도 ESS용 삼원계 이차전지 기술이 탄탄해 북미 신재생 에너지 시장 확대에 수혜를 입을 것으로 증권가는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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