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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라이벌이 모두 이기는 법 [thebell note]

허인혜 기자공개 2023-08-24 11:30:09

이 기사는 2023년 08월 23일 07: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재벌가의 소식은 늘 화제다. 시기와 대상만 다를 뿐 재계에 입성한 인물들이면 한번쯤 세상 사람 입에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최근 한 식사자리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화두로도 재계 자제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SNS에 친구들과의 일상을 공유한 게 화젯거리였다. 좀(?) 화려한 일상이긴 했으나 일반인이라면 관심 밖이었을 일, 별별 행보가 모조리 조명되다니. 웃픈 상상이지만 삶의 배경을 고를 수 있다면 재벌가보다는 지방 유지의 딸이면 좋겠다는 데 까지 상념이 미쳤다.

같은 이유로 재계 인물들의 인생이 '당사자에게는 참 얄궂을지도'라고 생각한 일이 있다. 정기선 HD현대 사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보면서다. 두 사람은 잘 알려진 절친이다. 한살 터울의 나이, 자수성가한 창업주 할아버지와 아주 유명한 아버지를 둔 재벌가 3세, 유력한 후계자. 굴지의 대기업 자제로 자라온 환경도 비슷했고 배경도 서로 거울 같은 돈독한 사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각 그룹의 간판 경영인이다.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면 '친구 사이'라는 관계성은 라이벌이라는 관계성 한참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두 인물의 친분은 그야말로 얄궂다.

HD현대와 한화오션의 양자대결이 시작되면서다. 근래 치러진 차세대 호위함 수주전은 첫 싸움인 만큼 뜨거웠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후폭풍도 길다. 이긴 쪽은 응당한 결과라 봤고 진 쪽에서는 억울하다며 반기를 들었다. 두 친구가 이만큼 서로 다른 쪽을 본 일이 있었을까.

그런데 라이벌전을 멀리서 보면 꼭 승패로 결론지어지지는 않는다. 메시와 호날두,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현대차와 테슬라는 단기전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있었지만 먼 관점에서는 꼭 집어 누군가가 패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라이벌전이 양쪽 모두를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정 사장과 김 부회장은 모두 국내 굴지의 조선사를 이끈다. 두 라이벌이 모두 이기면 두 기업은 물론 국내 조선 산업계에도 그야말로 해피엔딩이다.

호위함을 둘러싼 양사의 갈등은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다. HD현대가 이긴다면 역전이고 한화오션이 승리하면 굳히기다. 어느 쪽이든 이번만큼은 패할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의 결론은 경쟁의 끝이기보다 라이벌전의 불을 키우는 기름이다.

두 라이벌이 이기는 싸움을 하려면 장기전을 치러야 한다. 글러브를 제대로 껴야 한다는 뜻이다. 참전자들은 저가수주를 지양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고가 선박 수주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한화오션은 신사업 투자자금 조달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알렸고 HD현대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 중이다. 친환경, 엔진 분야도 두 라이벌의 싸움터다.

산업의 관찰자로서 이만큼 반가운 라이벌전이 또 없다. 제살 깎는 경쟁만 피한다면 두 절친의 다툼은 더 길고 치열하게 이어져도 좋다. 결국은 둘 다 이기는 싸움이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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