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 새 길을 묻다]한국 IB는 금융시장 주류가 될 수 없나[자본시장 육성]⑪"기업 조달 중심은 은행아닌 자본시장"…인위적 IB 지주 육성은 리스크
서은내 기자공개 2023-09-08 07:33:10
[편집자주]
인공지능이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시대가 열렸다. 빅테크들이 금융업에 진출하고 애플 통장까지 나왔다. 애플 통장엔 석달만에 100억달러, 12조원의 자금이 몰렸다. 이종산업간 결합은 물론 영역과 경계가 무너지면서 금융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한국 금융은 어디로 가는가. 여전히 규제와 관치의 테두리 안에서 더딘 변화를 보이지만 조금씩 새 길을 찾아가고 있다. 더벨은 주요 금융사 및 연구소 협회의 브레인들을 찾아 한국 금융 산업의 현 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묻고 그들의 고민과 변화 방향과 속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 기사는 2023년 09월 04일 15: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금융지주사는 10곳이다. 이 중 한국투자금융, 메리츠금융을 제외하면 모두 은행 중심 금융지주 체제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은행에 치중된 금융 시스템에서 나아가 투자은행(IB) 등 비은행 중심의 금융지주를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초기 투자은행 육성론을 펼치기도 했다. 금융시장 발전을 위해 직접 자본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투자자 신뢰 제고와 모험 자본 활성화를 골자로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부문을 지원할 것을 주문했다.
이처럼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상업금융과 투자금융이 균형감있게 발전해야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다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업은행 중심 금융시장의 구조가 오랜 시간동안 국내 환경이 맞물린 결과로 형성됐으며 이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은 리스크가 따른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은행이 국내 금융시장의 주류로 올라설 수 있을까.
◇ 모험자본 투자 유리, '저성장''고령화'에 IB 역할 주목
은행 중심 금융시스템 혹은 투자금융 즉 자본시장 중심 금융시스템은 각각의 강점을 지닌다. 전자가 안정과 책임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후자는 자율과 기업경영에 보다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아가야 하는 타이밍을 놓고 볼 때 모험 자본 투자에 유리한 IB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혁신산업 위주의 재편이 필요한데 은행은 모험자본 투자가 불가능하다"며 "또 고령화 시대에 은퇴 후 안정적인 삶을 위해 금융자산의 수익률을 높여가야 하는 문제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은행 대비 수익률이 좋은 자본시장을 강화할 유인도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은행 중심 금융시스템에 대한 편중도를 자본시장 등 비은행 확대를 통해 완화하는 방향은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 은행계열 금융지주 연구소는 "은행 중심의 금융구조 하에서는 금융산업의 실적이 대출규모와 이자마진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통화정책이나 경기변동 같은 외부 충격에 민감해 불확실성이 높다"며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 시장 중심으로의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글로벌 금융위기 후 전통 IB 다각화 모색
그러나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을 보면 투자금융이 금융시장의 중심을 이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업금융과 투자금융 중 투자금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알려진 곳은 미국과 영국 뿐이다. 미국도 자산 규모로만 따지면 IB에 비해 은행의 규모가 더 크다. 유럽이나 일본 역시 상업은행 중심이며 은행이 금융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경우 은행업 위주의 성장에 한계에 봉착하면서 자본시장 등 비은행 부문에서 성장 활로를 모색하고는 있다. M&A, 증자, 사업부문제 등 조직개편으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다만 이같은 변화들이 단기간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최근 부동산 PF를 비롯해 IB 관련 리스크가 번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IB의 역할을 확대해 나감에 있어 인위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는 지양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다수다. KB경연구소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 법'으로 투자은행의 몸집 키우기가 확대되면서 투자은행 중심으로 금융산업이 재편되었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로 인한 문제들이 발생했다"고 짚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리스크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내외 금융시장의 규제들이 만들어졌으며 이 때문에 전통 IB들도 과거와 같은 변동성 높은 사업모델을 영위하기 어려워졌다. 그 후로 전통 IB들이 다각화된 사업, 고객기반을 보유한 금융지주사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전통적인 IB들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트레이딩이나 기존 IB 사업에 편중된 수익구조에서 나아가 리테일, 자산관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으며 고객층도 대기업, 기관투자자에서 소매, 상업은행은 물론 디지털뱅크 설립 등으로 소매고객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 금융 상당부분 자본시장으로 넘어가
현재의 은행 중심 금융지주 체계는 우리 나라의 특성과 역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인 만큼 앞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선진화돼 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투자금융의 영향이 커질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여신금융협회는 "국가 별로 금융산업의 특색이 다르고,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자본시장 중심 금융시장 발전과 경제성장 간의 관계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우선 기업투자 환경이 개선되고 주식시장의 선진화, 투명화 등이 선행되면 자연스럽게 자본시장의 규모와 영향력 또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를 볼 때 이미 상당부분 국내 금융산업이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전환이 이뤄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금융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많은 대기업들은 대출이 더 이상 주요 자금 조달 채널이 아니다"라며 "회사채, 주식을 발행하고 인수합병하는 등 이미 자금 조달 채널이 자본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평가했다. 또 "금융의 중심이 자본시장인지 은행인지를 따지는 주체는 기업이 돼야 하며 정치권에서 바꾼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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