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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승계 시나리오]최태원 회장,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①승계 의지 공식화…'안갯속' 다양한 시나리오 제기

조은아 기자공개 2023-10-17 07:37:14

이 기사는 2023년 10월 13일 14: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만약 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누가 그룹 전체를 이끌 것인가. 승계 계획이 필요하다. 나만의 계획이 있지만 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이 11일 블룸버그통신에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최 회장이 언론에 승계에 대한 의견을 밝힌 건 최근 2년 사이 이번이 세 번째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심경의 변화가 엿보인다. 2021년 말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려있다', 지난해 말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등 다소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면 이번엔 직접 승계 계획의 필요성을 인정한데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는 점도 밝혔다.

그간 SK그룹에서 승계는 화두가 아니었다. 승계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로 여겨졌다. 최태원 회장이 아직 한창 때인 데다 자녀들 역시 나이가 어린 편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1960년생으로 60대 초반이다. 동분서주하며 그 어느 때보다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기도 하다. 자녀로는 1남2녀를 두고 있는데 1989~1995년생이다. 특히 아들 인근씨가 막내로 아직 20대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아직은 승계와 동떨어져 있다는게 대체적인 평이다.


상속 분쟁으로 고초를 치렀던 다른 그룹과 달리 형제 및 사촌들의 협의에 따라 순조롭게 경영권 이양이 이뤄졌다는 점도 SK그룹이 승계를 깊게 고민하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최 회장은 부친 최종현 선대회장이 1998년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38세에 회장에 올랐다. 당시 가족회의 결과에 따 최 회장이 회장으로 추대됐다.

현재 SK그룹은 국내 주요 그룹 가운데 승계와 관련한 시나리오가 가장 불투명한 곳 중 하나다. 승계 작업이 진행된 것도, 정해진 것도 거의 없다. 최 회장의 세 자녀들이 모두 SK그룹 계열사에서 근무 중이지만 누구 하나 앞서있지도 뒤처져있지도 않다. 경영수업만 받고 있을 뿐 경영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지 않다.

장녀 윤정씨가 가장 먼저 입사했는데 이제 7년차를 맞았다. 그나마 중간에 몇 년 유학으로 자리를 비웠다. 차녀 민정씨는 2019년 입사해서 이제 5년차를 맞았는데 그도 지난해부터 회사를 휴직 중이다. 막내 인근씨는 2020년 입사해 올해 4년차다.

갓 세대교체를 마무리한 그룹 중 가장 순조롭게 경영권을 넘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화그룹을 살펴보면 SK그룹의 '여유'가 더욱 눈에 띈다. 김동관 부회장은 28살이던 2011년 말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선임됐다. 2010년 초 비서실 차장으로 입사한 지 채 2년도 되기 전이다. 이후 10년 동안 촘촘한 후계자 플랜에 따라 움직였다. 현재 인근씨의 나이가 28살이다. 10년이 넘는 시대의 변화를 고려해도 격차가 크다.

SK그룹은 승계에 대한 불확실성도 높은 편이다. 다른 그룹처럼 원칙이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LG그룹의 경우 장자 승계 원칙을 분명하게 세우고 있고 GS그룹에선 여성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화그룹처럼 일찌감치 장남에게 주력 사업을 물려주고 부수적 사업들은 차남과 삼남에게 준다는 대략적 시나리오조차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이다.

1대에서 2대로의 승계 과정을 봐도 뚜렷한 공식이 보이지는 않는다. 창업주가 타계하자 동생이 물려받았고 그 다음엔 동생의 장남이 그룹 회장에 올랐다. LG그룹처럼 승계에서 배제된 뒤 독립해서 새로운 그룹을 꾸리지도 않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 창업주의 장남과 차남 등 SK그룹 2세들은 현재 '따로 또 같이'라는 구호 아래 한 그룹으로 묶여 있다. 계열분리 가능성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지분 정리 등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결국 최 회장의 이번 발언은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내부적으로도 승계에 대한 고민이 컸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녀들의 나이가 어리고 그룹 경영권을 실제로 물려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과도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승계 의지를 공식화함으로써 불확실성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재계에선 승계 작업이 늦어지고 관련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그룹에 리스크로 작용한 사례가 많았다.


원칙이 없는 만큼 시나리오는 다양하다. 장자 승계를 따를 경우 인근씨가 뒤를 이어받아 그룹 회장에 오르게 된다. 아니면 막판까지 3명을 동등하게 경쟁시킬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지금의 SK그룹과 마찬가지로 한 명이 총수를 맡아 그룹 전반을 살피고 나머지는 주력 계열사의 대표이사 등을 지내며 총수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는 시나리오 역시 가능하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인에 의한 경영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실제 최 회장은 2020년 BBC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승계와 관련된 질문에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제 자녀도 노력해서 기회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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