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리더십 시프트]정기선 부회장 시대, 리더십 소프트웨어도 바뀐다⑥부회장 모두 퇴진…가삼현→김성준 교체가 보여주는 '탈(脫)현장 기조'
조은아 기자공개 2023-12-19 08:34:50
[편집자주]
물갈이'는 어느 정도 본능에 가깝다. 조직을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건 믿을 만한 '자기 사람'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주요 그룹에서 세대교체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한화그룹 등 마무리를 코앞에 둔 곳도 여럿이다. 왕이 바뀌면 신하도 바뀌는 법. 오너와 함께 한 시대를 만들었던 전문경영인들도 세대교체 흐름 속에서 하나둘 그룹을 떠나고 있다. 더벨이 주요 그룹의 오너 교체와 이에 따른 전문경영인들의 '성쇠(盛衰)'를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5일 09시1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HD현대그룹은 최근 몇 년 사이 그 어느 곳보다 변화가 많았던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지주사 체제 전환과 계열사 인수합병(M&A), 사명 변경과 사옥 이전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세대교체 역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올들어 정기선 부회장이 승진하는 동시에 그와 그간 호흡을 맞췄던 새 인물들의 계열사 대표이사단 진입도 본격화됐다. 아버지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들도 상당수 그룹을 떠났다. 이제 기존 HD현대그룹을 대표하는 인물은 권오갑 회장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권 회장이 내년에도 HD현대 대표이사를 이어가는 등 여전히 건재하지만 정기선 부회장 측 인물들 역시 빠르게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신구(新舊)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그룹에 공존하면서 '연착륙'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징검다리 3인 중 2명 떠나…세대교체 구부능선 넘었다
정기선 HD현대 및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은 11월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21년 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지 2년 만이다. 정 부회장의 승진은 사실 시간문제일 뿐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관심을 끈 건 일부 계열사의 대표이사 교체였다. HD한국조선해양에서는 김성준 미래기술연구원장 부사장이, HD현대중공업에서는 노진율 안전통합경영실장 사장이 각각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김 부사장은 정기선 부회장과, 노진율 사장은 이상균 HD현대중업 대표이사 사장과 공동 대표이사로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새 얼굴만큼이나 물러나는 인물에도 시선이 쏠렸다. 가삼현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부회장과 한영석 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번에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둘 모두 권오갑 회장과 함께 그룹에 40년 이상 몸담은 베테랑이다. HD현대그룹이 정기선 부회장 중심의 오너경영 체제로 넘어가는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인물이기도 하다.
둘 모두 옛 현대중공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가 부회장은 영업 전문가, 한 부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내부 출신이면서 조선사의 핵심으로 꼽히는 영업과 설계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HD현대그룹의 세대교체가 구부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다.
특히 정기선 부회장이 그룹의 유일한 부회장으로 남았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 변화다. HD현대그룹은 정몽준 이사장이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서 전문경영인 체체로 운영돼왔다. 권오갑 회장은 오너 회장이 없는 HD현대그룹에서 2016년 부회장, 2019년 회장으로 승진하며 수장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는 그룹의 무게중심이 정 부회장으로 이동하면서 그와 호흡을 맞출 주요 전문경영인의 직급 역시 부사장~사장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리더십, 소프트웨어도 바뀐다…'현장 중심'에서 벗어나
특히 조선부문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로 김성준 부사장이 선임됐다는 건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가삼현 부회장과 김성준 부사장은 부회장과 부사장이라는 직급, 1950년대생과 1970년대생이라는 나이 차이만큼이나 걸어온 길 역시 다르다.
가 부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HD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대한축구협회에 파견돼 16년 넘게 몸담았으나 나머지는 모두 HD현대중공업에서 보냈다. 특히 HD현대중공업에 복귀한 뒤 대부분 선박 영업 분야에 몸담은 영업 전문가다.
반면 김 부사장은 HD현대그룹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조선사에 몸담은 경험이 없다. 조선공학을 전공하긴 했으나 학업을 마친 뒤 베인앤컴퍼니,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등 컨설팅회사에 몸담았다. 그룹에 입사한 뒤에도 기획 부문을 거쳐 미래기술연구원장을 지냈다. 조선소, 이른바 현장에서 근무한 경험은 전혀 없다.
두 사람의 '배턴 터치'가 보여주는 건 명확하다. 그동안 현장 중심의 카리스마형 리더가 인정을 받았다면 앞으로는 전략이나 기획, 그리고 기술 쪽에서 전문성을 쌓은 인재의 중용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단순 조선업을 넘어 전후방산업, 조선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산업을 경험한 인물 역시 핵심 인재로 떠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원래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조선사에서는 조선소에서 직접 바닷바람을 맞아본 인물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HD현대그룹을 중심으로 전략과 기획 분야를 아우르는 인물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HD현대로보틱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김완수 HD현대 경영지원실장 부사장 역시 김성준 부사장과 닮은 꼴이다. 김완수 부사장은 1969년생으로 미국 제이콥스엔지니어링, 삼성엔지니어링을 거쳐 삼성물산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다. 경영지원과 영업, 신사업 발굴 등 다방면에서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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