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오너가 분쟁]신주무효 첫 '심문', 뜨거운 감자된 세가지 쟁점경영권 변동 요건 성립, 계약 시점에 경영권 분쟁 여부 그리고 경영상 필요요건 충족
차지현 기자공개 2024-02-23 07:01:06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2일 11: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미사이언스와 OCI홀딩스의 통합 향방이 갈리는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 심문에서 제기된 쟁점은 크게 세가지다. 경영권 변동 요건이 성립하는지 계약 시점 경영권 분쟁이 있었는지 그리고 경영상 필요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이다.◇쟁점1. 경영권 변동 요건 성립하나
한미약품그룹 오너가 장·차남 임종윤·종훈 사장이 제기한 한미사이언스 신주발행 무효 주장은 이사회가 경영권 교체를 의결할 수 있는지에서부터 출발한다. 상법에 따르면 경영권 변동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이다. 발행 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출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번 신주발행으로 인해 경영권이 바뀌는 것인지에 대한 임종윤·종훈 사장 측과 한미사이언스 측 입장은 확연하게 달랐다.
임종윤·종훈 사장 측 법률 대리인은 "주식 양수도나 현물출자는 개인 간 거래이기 때문에 상관없고 여기까진 지배구조의 현실적인 변동이 없다"면서도 "신주를 발행하는 순간 OCI홀딩스가 최대주주가 되고 송영숙 회장·임주현 사장이 해당 지분을 가지면서 임종윤·종훈 사장보다 훨씬 높은 지분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거래로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은 지배력을 강화하는 반면 임종윤·종훈 사장 지배력은 현저히 떨어져 사실상 경영권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며 "패키지 거래가 경영권 변동을 초래했다는 게 이 사건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미사이언스 측은 신주발행이 경영권 변동을 야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펼쳤다. 한미사이언스 법률 대리인은 "신주발행에 따른 임종윤·종훈 사장 지분율 하락은 1% 남짓에 불과하다"면서 "이 사건 거래 전후로 임종윤·종훈 사장 지분율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종윤·종훈 사장 측은 미미한 지분 변동도 중대한 변화라고 반박했다. 이들 측 법률 대리인은 "지분율 1% 변동이 중대하지 않다고 했는데 핵심은 지분율이 역전된다는 것"이라며 "이전까지 가족끼리 거의 동등한 지분율을 유지했는데 신주발행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의도대로 통합이 이뤄져 임주현 사장이 통합법인 대표이사가 되면 경영권 비대칭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도 말했다.
◇쟁점2. 계약 시점이 경영권 분쟁 상황이었나
다음 질문은 한미사이언스가 신주발행을 결정할 당시 상황을 경영권 분쟁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특정 세력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신주발행은 대체로 위법이라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경영권 분쟁 상태에서 경영진의 지배권 방어를 목적으로 한 신주발행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무효라는 과거 판례가 있다.
임종윤·종훈 사장 측은 한미사이언스와 OCI홀딩스 계약 체결 시점에 이미 양측 갈등이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고(故) 임성기 명예회장 타계 이후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독단적 경영을 하고 임종윤·종훈 사장을 경영에서 배제하면서 이견과 갈등이 계속됐다는 설명이다.
임종윤·종훈 사장 법률 대리인은 "임종윤 사장 임기 만료 이후 연임할 수 있었음에도 송영숙 회장이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결국 경영에서 배제됐다"며 "갈등이 잠복해 있는 상황에서 송영숙 회장이 우호적인 사람들도 임원을 채우고 경영을 하다가 통합을 기습 발표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을 뿐 가족 4명 지분이 엇비슷하게 돼 있으면서 갈등 구조가 계속 이어졌다"면서 "모친과 갈등하는 게 부끄러워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건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하는 건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미사이언스 측은 경영권 분쟁 조짐조차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오래전부터 송영숙 회장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고 임종윤 사장은 그다지 경영권에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임종윤 사장이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DX&VX 경영에만 몰두한 점, DX&VX 주식 취득을 위해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각한 점을 제시했다.
한미사이언스 법률 대리인은 "임성기 명예회장 사망 후 공동상속인간 합의 내용을 보면 송영숙 회장이 법적상속분보다 두 배 더 많은 주식을 취득하는 데 동의했다"며 "임종윤·종훈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대신 다른 재산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임종윤 사장은 임기가 만료하자 스스로 판단에 의해 사내이사에서 퇴임했고 당시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형제는 여태 기여한 송영숙 회장 역할을 인정하고 경영에 직접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임종윤 사장은 2021년 10월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현물출자방식으로 처분해 상장회사인 DX&VX의 최대주주가 됐고 이후에도 한미사이언스 주식 매각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자기 회사 지분을 늘려왔다"며 "경영권 분쟁 중이라면 다른 재산을 처분해 오히려 한미사이언스의 지분을 늘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족 간 갈등이 없었다는 상징적 사례로 임주현 사장의 무담보 대여를 꺼내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한미사이언스 측 법률 대리인은 "임주현 사장은 자신도 주식 담보로 거액 현금을 차입하고 있고 상속세로 빠듯한 상황임에도 오빠 임종윤 사장의 요청에 따라 266억원이라는 거액을 무담보로 대여해주고 이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임종윤·종훈 사장 법률 대리인은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 주장처럼 가족이 서로 주식을 빌려줄 정도로 사이가 좋고 화목하게 지냈다면 이 같은 중대한 거래를 임종윤·종훈 사장에게 말도 없이 기습적으로 진행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쟁점3. 신주발행 경영상 목적 타당했나
앞선 쟁점들에 대해 양측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가장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부분은 신주발행의 경영상 필요 요건 충족 여부다.
경영권 변동 요건이 성립하더라도 정당한 경영상 목적이 있을 시 신주발행은 허용하기 때문이다. 또 한진칼-KCGI 경영권 대립 등과 같이 법원이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도 신주발행을 허용한 사례도 많다.
임종윤·종훈 사장 측은 이번 신주발행이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사익 추구 목적으로 진행됐다고 피력했다. 나아가 한미사이언스 측이 중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 및 검토하지 않고 이번 신주발행을 결정했다고 봤다.
임종윤·종훈 사장 법률 대리인은 "한미사이언스, 한미약품 모두 실적이 좋아지고 있는 등 긴급하게 자금 조달이 필요하지 않았다"며 "경영상 정당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송영숙 회장·임주현 사장이 상속세를 마련하고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한 신주발행으로 이는 위법하다"고 말했다.
이들 측 법률 대리인은 "자회사 중 현금을 많이 보유한 곳도 있는데 이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갑자기 신주발행으로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온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미사이언스 측은 자본 확충과 타 기업 전략적 제휴가 절실했던 만큼 신주발행이 경영상 목적 달성에 꼭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한미사이언스 측 법률 대리인은 "작년 3분기 기준 차입금 규모가 1800억원으로 증가하고 부채비율은 2019년 대비 3배 넘게 늘었을 정도로 재무구조 크게 악화한 상황이었다"면서 "회사 재무 상황은 단순히 영업이익만 볼 게 아니라 현금흐름을 통해 단기 차입금 상환 여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관 규정상 제 3자 배정 신주발행 요건은 재무구조 개선이지 긴급성과는 관계가 없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신주발행으로 외부에서 장기적인 연구개발(R&D)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미약품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 업계 최고인 21% 수준에서 2021년과 2022년 13.4%대로 급락했다"며 "그동안 경쟁사는 R&D 비용을 늘리면서 격차를 벌렸다"고 했다.
또 한미사이언스 측은 자금이 부족해 입었던 경영상 피해 사례들도 언급했다. 한미사이언스 대리인은 "다국적 제약사보다 임상 속도가 앞서던 폐암 치료제 개발을 자금력이 부족해 포기해야 했던 서글픈 사정이 있다"면서 "자체 개발해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호중구감소증 치료제의 경우에도 해당 제품 해외 유통 파트너사 경영이 어려워져 인수를 하고 싶었지만 2000억원이 없어 포기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신주를 발행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선 "개인 상속세 마련을 위한 주식매매계약 체결도 맞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신주발행이 경영상 배임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지배구조 불안정성은 신약개발 등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제약사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라며 "이번 신주발행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게 아니냐는 질문은 전체 주주 이해관계를 애써 외면한 논리"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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