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영업경쟁의 그림자]저금리에만 '올인'…실수요자에 피해②기관 외면에도 증액…캡티브 요구도 '빈번'
윤진현 기자공개 2025-01-21 08:04:14
[편집자주]
회사채 시장의 주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발행사와 증권사 사이 일종의 카르텔이 고착화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영업 관행을 금지하고 있지만 암암리에 진행되는 탓에 규제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회사채 시장의 과당 경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유무형의 비용은 고스란히 실수요자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더벨은 경쟁이 초래한 회사채 시장의 기형적 발행구조와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5년 01월 15일 15시2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이 발생했음에도 증액 발행을 마친 사례가 등장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투자자의 기대치보다 낮은 금리 탓에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최대한도로 증액 발행하자 시장 왜곡이란 분석이 제기됐다.주관사의 저금리 제시 경쟁 과정에서 이번 사례가 등장했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공모채 시장에서 영업 관행은 조달 금리를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캡티브 물량을 동원해 저금리 응찰에 합의하는 식이 대표적이다. 발행사 우위의 회사채 시장 구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피해는 실수요자들의 몫으로 전가되는 상황이다.
◇기관 외면에도 증액 발행…저금리 좇다 시장 왜곡 '지적'
지난해 연말 수요예측을 치른 한 기업이 전량 미매각을 기록했다. 기관 투자자가 단 한 곳도 응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외면했다. 업계 관계자들이 이 딜을 주시한 배경으론 전량 미매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액 발행을 마친 점이 꼽힌다.
단독 주관사가 증액 발행 한도를 모두 채워 총액 인수를 마쳤다. 사실상 시장 금리로 대출을 해준 것이란 평가가 제기된 이유다. 금융투자협회의 규정상 미매각 물량을 주관사가 인수하는 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금융투자협회 모범규준상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을 채우지 못해 미매각이 발생하거나, 발행조건 확정 이후 투자자의 미청약(미납입)이 발생한 경우 인수회사가 떠안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금리가 낮아 기관의 외면을 받았단 점에서 시장 왜곡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나치게 낮은 금리 수준으로 다수의 증권사가 주관 경쟁을 포기했다고 알려졌다. 저금리 조달에 집중하는 영업관행을 고수하다 이번 사례가 발생했단 의미다.
증권사 커버리지 본부 관계자는 "저금리 조달에 집중하는 영업 관행을 고수하다 보니 이같은 현상도 포착되고 있다"며 "IB 하우스들의 영업 경쟁이 심화하면서 조달 금리가 왜곡되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발행사 캡티브 요구도 여전…수요예측 도입 이전 '회귀' 평가도
회사채 시장에서 주관사들은 발행사의 조달 금리를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고 있다. 일례로 캡티브 영업을 통해 더 낮은 금리로 발행을 마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캡티브 영업은 증권사들이 계열 보험사, 자산운용사, 종금사, 캐피탈사 등의 수요예측 참여를 약속하며 딜을 수임하는 방식이다.
금융당국의 규준에 따르면 수요예측에서 모집액 이상의 유효수요를 확보하면 인수회사가 자기계정으로 인수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증권사 자체 보유 계정이 아닌 리테일을 통해 참여해야 한다. 최대한 낮은 금리로 수요예측에 응찰한다는 점에서 진성 투자자들이 반발했다.
영업 관행의 피해가 고스란히 채권 투자 실수요자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다만 불법이 아닌 탓에 금융당국도 자율규제 원칙을 고수하면서 뾰족한 해법이 없다고 전해진다. 올해도 연초부터 발행사들이 캡티브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IB 업계 관계자는 "연초 공모채 발행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캡티브 참여를 요구하는 발행사는 올해도 다수 있다"며 "캡티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과정이 사실상 불가하기에 업계 관계자들도 주관 지위를 위해 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이에 증권업계에선 지난 2012년 수요예측 도입 전과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다고 평한다. 회사채 수요예측 도입 전 금리는 발행기업의 요구에 따라 정해지곤 했다. 통상 발행사들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 전 증권사를 통해 기관투자가들의 희망 금리와 물량을 파악해 가장 유리한 조건을 택하는 구조였던 탓이다.
제도의 도입으로 공모채 가격결정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을 받은 것도 잠시, 증권사와 발행사의 카르텔로 수요예측이 다시금 마비됐다고 여겨진다. 시장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단 지적이 제기된다.
크레딧 업계 관계자는 "추가 규제가 이뤄지는 게 쉽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시장 선진화를 위해서 참여자들의 투명성 제고 노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합의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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