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8월 08일 08: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통상적으로 이렇게 시작되는 비상경영은 시작은 있는데, 끝나는 시점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얼마 전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한 유통가 임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재계가 말하는 비상경영에는 사실상 '임원의 주6일제 근무'가 포함된다. 토요일 오전 출근해서 점심 식사 후 퇴근하기까지의 일과를 설명하던 도중 기자가 "비상경영은 언제까지 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 임원은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토요일 근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실적 악화가 지속되자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재계가 비상벨을 누르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위기 때마다 비상경영을 시행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중요한 점은 누가 먼저, 언제 시작하는 것이다. 당연히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이 시작을 알리는 '휘슬(Whistle)'을 불면 주요 기업으로 퍼진다고 보면 된다.
유통가도 긴장 태세로 전환되고 있다. 업황 악화에 따라 희망퇴직이나 대표 교체 등을 통해 분위기 쇄신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고 알음알음 주 6일 근무가 확대되고 있다.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고 위기의식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임원들이 주말에 출근하는 유통사들도 많아지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이들은 토요일 아침에 출근 후 뉴스 브리핑 등을 챙기고 주중에 바빠서 나누지 못한 안건에 대해 임원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한다. 월요일에 진행되는 주간 회의 안건도 미리 챙길 수 있어서 나쁘지는 않다는 평가였다. 점심 이후 퇴근을 하기 때문에 오후에는 일정도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듣고 보니 토요 근무 효과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물음표가 생겼다. 풀어진 마음을 행동으로 다잡는 것에는 공감하나 비상경영의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점에서 더 의구심이 들었다. 뚜렷한 돌파구나 경영 비전을 먼저 세운 후 이를 달성하기 위해 힘을 바짝 주는 것이 아닌 '안하면 안되니까' 진행되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기업이나 임원은 주말에도 업무를 보는 게 보편적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토요 근무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 6일제를 강조하는 것은 전체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과거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2024년도 비상경영 체제가 일반 직원들의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기약 없이 반복되는 임원들의 토요일 근무는 실무 직원들의 부담으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처음의 의도와 달리 임원들도 느슨해지며 출근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나 주중에 처리 못한 업무를 보는 것에 그칠 수 있다.
단순히 비상경영 체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조직에 긴장감을 부여하면서 내실을 다지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간을 명확하게 정한 후 실질적인 아웃풋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어떨까. 상징적인 '끝'이 있어야 참여자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재계의 비상경영이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 후 마지막을 알리는 '종료 휘슬'을 울리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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