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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적혈구와 규제의 유사성 [thebell note]

노윤주 기자공개 2024-08-13 08:04:02

이 기사는 2024년 08월 12일 07: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여름은 유독 덥고 습하다. 얼마 전 만난 취재원은 이런 계절감을 살려 《모기》라는 책을 읽었다고 했다. 유명한 소설 《개미》와 유사한 책이냐고 물었더니 "정말 모기에 관한 내용이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 꺼낸 이야기라 순식간에 궁금증이 차올랐다. 질문을 채 하기도 전에 그는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며 '낫 적혈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낫 적혈구는 디스크 모양의 정상 적혈구와 달리 초승달을 닮았다. 그래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독특한 형태 때문에 낫적혈구는 말라리아에 강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진다.

취재원은 "책에서는 인류가 말라리아와 싸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낫 적혈구를 만들어 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진화의 일종이었다는 거죠. 아이러니한 건 스스로 만들어 낸 낫 적혈구가 말라리아 치료가 가능해진 현대에 와서는 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네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낫 적혈구를 규제에 비유했다. 당장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마련한 규제 장치가 미래에는 성장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붉은 깃발법'이다. 증기기관차가 처음 보급되던 시기 영국은 자동차 한 대에 세 명의 운전수를 두게 했다. 한 사람은 운전, 또 한사람은 연료 충전, 마지막 한 사람은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사람들이 비켜 갈 수 있도록 신호수 역할을 하도록 규제했다.

자동차 보급으로 일자리를 잃을 마부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결국 마차는 자동차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동차를 사람보다 느리게 만든 법 때문에 영국은 산업 주도권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빼앗겼다.

이후 16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산업에서는 여전히 붉은 깃발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생 산업의 성장을 막는 과한 규제를 풀어달라는 목소리다.

특히 가상자산 산업은 강한 규제만 있을 뿐 진흥책은 전무하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는 해외에 진출할 수 없다. 은행과의 실명계좌 계약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가상자산거래를 허용한 국가 중 유일하게 법인의 원화거래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조치는 투자자 보호라는 명목에서 이뤄지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정체된 사이 미국과 일본 등 해외는 활발히 움직이는 중이다. 거대한 AI 열풍 속에서도 가상자산은 미래 동력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살아남고 있다.

여전히 투기, 사기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만 '치료제'가 개발될 수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땐 지금 규제의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 이 상황이 마치 낫 적혈구 같다는 취재원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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