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0월 07일 07: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대한민국 사모펀드(PE)가 태동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과거 IMF 시절 국내 자본시장은 해외 자본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풍부한 자금력을 토대로 가치가 떨어진 국내 자산을 헐값에 사들인 후 몇십 배 차익을 내고 국내 시장을 떠났다.이 과정에서 먹튀 논란도 불거졌다.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내에서도 법 제도가 정비됐다. 2004년 들어 간접투자자산운용법 개정으로 비로소 국내 자본이 온전히 투자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20년 동안 PE 시장은 질적·양적 성장을 이뤄냈다. 이 기간 사모투자펀드(PEF)는 1000개를 넘어섰고 약정액 역시 100조원을 돌파했다. PEF 운용사에 돈을 대는 투자자 풀도 넓어졌다. 국민연금을 필두로 우정사업본부, 군인공제회, 사학연금, 교직원공제회 등이 유동성 공급자로 자리 잡았다.
PEF는 기본적으로 돈을 담고 굴리는 도구다. 이 자금을 관리하는 데 있어 자기 재산처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원칙을 목숨처럼 여긴다. 그 정신이 선관주의다. 더욱이 국내 대형 PE들은 대부분 연기금과 공제회의 돈을 굴린다. 모두 국민의 돈이다. 더 강력한 선관주의와 신의성실 원칙을 적용받는다.
사실상 공적 자금을 굴리는 탓에 각종 노이즈에 민감하다. 실제 국내 PE만큼 ESG 투자에 진심인 곳도 없다. 환경과 사회 이슈, 지배구조 관점에서 어긋난 투자에는 돈을 쏘기 어려운 구조다. 돈을 준 LP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만 되면 투자하는 시스템이 전혀 아닌 셈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투철한 소명 의식과 국민들의 돈을 불린다는 일념 아래 스스로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일하는 PE들도 여럿이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의 시장과 위상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위안도 잠시 최근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지역사회의 PE에 대한 인식과 관점을 살펴보자면 헛헛함이 지워지지 않는다. '먹튀 자본', '매판 자본', '기업 사냥꾼', '매국 자본' 수식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 짐짓 2000년 초 IMF 직후 대한민국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논리의 싸움이 아닌 프레임의 싸움으로 노선을 정한 듯 말이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고려아연 대주주 측의 입장과 논리가 다를 수는 있다. 적대적 M&A에 대한 판단, 이사회 견제와 작동에 대한 이견, 대항 공개매수의 배임 이슈 적용 여부 등 각자 할 말이 많을 법하다. 이들의 주장을 듣고 논리 구조를 뜯어보면서 정당성을 판단하는 것이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논점의 이탈을 전략으로 삼아 '메신저'를 공격하는 이 방식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꼭 합심이라도 한 듯 일방의 편에 선다면 그 의도를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나.
고려아연 공개매수의 끝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번 투자 건이 다른 PE들의 투자 전략과 방향성에 한계를 지우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국내 PE들은 많은 도전 앞에서 좌절도 했지만 결국 성장과 도약의 결실을 맺어왔다. 신의성실과 선관주의 원칙 아래 좋은 투자처 발굴에 더욱 힘을 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늘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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