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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파생상품의 탄생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4-10-15 09:00:17

이 기사는 2024년 10월 15일 08: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이자는 대체로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자가 없다면 여신금융의 인센티브가 별로 없어서 오히려 돈이 필요한 사람이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진다. 즉, 금융시장이 발달하기 어렵다. 금융이 발달한 곳일수록 교역이 활성화되고 그러려면 이자가 있어야 한다.

중세의 교회는 원칙적으로 이자 징수를 금지했다. 이자 징수는 교회법에 의하면 신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자를 받는 행동을 범죄로 규정했고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도 마찬가지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자는 교회에서 파문되었다.

그 시대의 이자는 요즘의 고리대(usury)였다. 단기금리 20%가 보통이었다. 30%까지 올라갔다. 그러니 좋게 보일 수가 없다. 이자를 금지했다기 보다는 고리대를 금지한 것이다. 고리대는 거의 노예계약이다. 돈을 빌려주고 1주일에 25% 이자를 붙이면 복리로 계산할 때 1년 이자율이 약 11,000,000%가 된다. 이런 야만적인 거래는 중세가 아닌 현대 영국에서도 자행되었다.

중세에는 유대인들만 이자를 받는 금융업에 종사했고 동서교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에는 다수 유대인들이 집단 격리거주지인 게토에 살면서 대금업을 영위했다. 이들이 당시의 상거래와 국제교역에 필요한 금융 수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사실 이자는 유대교에서도 금지했는데 유대인이 아닌 채무자로부터 이자를 받는 것은 허용되었다.

1500년경 베네치아에 처음 생겼던 게토는 유대인 보호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소다. 십자군은 유대인을 보이는 대로 학살했다. 이자 문제로 일어났던 유대인 학살은 12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89-1190년 예루살렘 탈환을 내걸고 레반트로 출정하던 십자군이 런던과 요크서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채무자들도 가세했다. 13세기에도 이자금지가 왕령으로 선포되었고 ‘범죄자’인 300명의 유대인들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처형된 적이 있다. 기독교로 개종하면 죄를 면할 수 있었다.

중세 시대 사람들에게 이자 때문에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다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교회에서 쫒겨나서 천국에 못가는 경우 갈곳이 마땅치 않다. 지옥밖에 없다. 현대인이 느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가장 엄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상거래와 금융의 필요성은 그때라 해서 없지 않았다. 사람들은 교회가 금지하는 이자를 사용하지는 않되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데 골몰했다.

여기서 유가증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거리 물품교역에서는 환어음을 송금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어음의 소지인은 어음의 만기가 도래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만기시 회수할 수 있는 금액보다 싼 금액에 오늘 당장 현금을 지불해 줄 용의가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할인이다. 이는 사실상 이자를 징수하는 것과 같지만 엄연히 이자의 징수가 아니어서 널리 활용되었다.

즉, 100원을 빌려 주면서 1년 후에 110원을 받는 행동은 사악한 행동이지만, 1년 후에 110원을 받기로 하는 문서를 오늘 100원에 판매하는 행동은 허용되었다. 다시 말해, 한 달 후에 101원에 되사기로 약속하면서 오늘 어떤 물건을 100원에 판다면 그 결과는 한 달에 1%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돈을 빌리는 것과 같지만 엄연히 이자는 아닌 것이다.

같은 가격에 물건을 되사기로 약속할 수도 있다. 소 10마리를 팔고 1년 후에 같은 가격에 되사기로 하되 그 사이에 출생한 송아지는 매수인의 소유로 한다. 이 방법은 오늘날에도 투자은행들이 사용하는 리포(Repo)거래의 기원이다. 리포시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단기자금시장이다.

1298년의 한 채무증서에는 이탈리아 제노아의 상인 자카리아가 남부 유럽의 한 항구에서 서부 유럽의 한 항구로 운송되는 30톤의 광물에 투자하기로 하면서 항해 중에 발생할 위험을 고려해서 Suppa와 Grilli라는 이름의 두 상인에게 그 광물을 매도한 기록이 나온다. 가격은 출발지에서의 시가보다 다소 낮은 가격이었다. 단, 화물이 서유럽의 목적지 항구에 무사히 도착하면 자카리아는 두 상인으로부터 출발지에서의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화물을 되살 권리를 보유하기로 약정했다. 이것은 자카리아가 출발지 가격과 두 상인에 대한 매도가의 차이만큼을 지불하고 콜옵션을 매입했다는 뜻이다. 자카리아는 화물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도착지 시세를 감안해 옵션 행사 여부를 결정했을 것이다.

ABS도 그 기원을 1522년에 프랑스의 파리 시가 시의 재정수입을 기초로 증권을 발행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본드신디케이트는 1157년에 베네치아가 콘스탄티노플과의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당시 왕이나 정부에 이자를 징수하는 것은 허용되었다. 기원전 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의 한 파피루스에는 선박에 실은 화물과 선박이 소실되는 경우 선주는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되며 대신 33%의 이자만 지불하기로 한다는 약정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현대적인 용어로 옮기면 선주가 33% 프리미엄에 채무를 변제하지 않을 옵션을 매입한 것이다.

외환도 매력 있는 거래였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 통용되는 돈 100원을 빌려주고 나중에 스페인에서 통용되는 돈 200원을 받는 것이다. 이 과정이 단순한 환전인지 아니면 이자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교회를 포함한 외부에서는 알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템플기사단이 여행자에게 약속어음을 내주고 일정 기간 자금을 운용했다 해도 외환거래가 개입되면 이자 징수가 발생했는지 알 수가 없다.

현대의 금융기관들이 거래하는 국채, 리포, 주택담보부증권 등등 다양한 금융상품도 중세에 교회가 이자를 징수하는 것을 금지하자 상인들이 그를 회피하는 수단을 고안해 내기 시작한데서 유래한다. 상업은행의 존재 근거가 되는 이자를 대체할 수단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현대의 투자은행들이 구사하는 첨단 금융기법이 탄생한 것은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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