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 연 적대적 M&A 시대]적대적 M&A 선봉장은 사모펀드 아닌 '헤지펀드'②운신 폭 넓은 헤지펀드, 주주 행동주의와 결합해 '위력'
이영호 기자공개 2024-11-05 08:02:13
[편집자주]
올해 자본시장 최대 이슈 중 하나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다.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게임체인저’로 뛰어들면서 분쟁 판도가 일거에 뒤바뀌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운용사의 투자 이슈가 아닌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투자 대상이 다변화되는 사건으로도 지목된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공격적 M&A 투자 전략이 국내 자본시장에 가져올 영향을 조망한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31일 10: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적대적 M&A 투자자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아닌 헤지펀드 운용사가 주류라는 데 업계 관계자들의 중지가 모인다. 물론 사모펀드 운용사가 적대적 M&A를 전혀 수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주도하는 대규모 적대적 M&A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근래 들어선 투자 선례가 많지 않고, 빅딜 역시 찾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최근 국내에서 적대적 M&A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인 주체는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다. MBK가 한국앤컴퍼니와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면서다. 그간 재계의 오랜 우군으로 협업 사례를 축적하던 MBK답지 않게 경영권 분쟁을 불사하는 바이아웃 투자다.
그간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와 국내 기업 간 적대적 M&A 사례는 드물었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한 KCGI가 대기업, 중견기업 등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이긴 했다. KCGI의 최종 목적은 주가 상승을 통한 차익 실현이지 타깃 기업의 경영권을 가져오겠다는 차원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적대적 M&A, 왜 헤지펀드 '몫' 됐을까
그렇다면 왜 헤지펀드 운용사가 사모펀드 운용사를 대신해 적대적 M&A 전략을 구사하는 것일까.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태생적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는 통상 5년 전후, 길게는 10년을 투자기간으로 잡고 지분 투자에 나선다.
운용사가 직접 기업 경영에 관여해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작업을 거친다. 주요 투자 대상이 비상장 기업이나 유형 자산이란 점 때문에 환금성과 유동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특성이 있다. 어지간해선 사모펀드 운용사의 '단타'를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헤지펀드 운용사의 투자대상은 상장사 주식은 물론, 파생상품과 채권 등을 가리지 않는다. 사모펀드 대비 영역이 넓다는 설명이다. 또 단기 관점에서 투자 후 신속하게 투자금 회수에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거래가 손쉬운 상품에 투자하는 만큼 유동성 면에서도 강점을 보인다는 평가다.
예를 들면 적대적 M&A가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투자자산을 매도해 현금을 늘리는 자금 조달 전략이 가능하다. 투자금 회수에 장시간이 걸리는 사모펀드와는 다른 부분이다.
특히 헤지펀드는 주주 행동주의와 결합해 적대적 M&A 시장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헤지펀드는 가치가 저평가된 타깃 기업을 대상으로 지배구조 개선, 비주력 사업과 자산을 매각하도록 요구하거나 최대주주에 경영권 매각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버드 로스쿨 지배구조 포럼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캠페인의 약 40%는 경영권 M&A를 포함했다. 행동주의 투자 절반가량은 단순히 주가를 제고하는 차원을 넘어 타깃의 경영권 인수 확보까지 수반한다는 의미다.
◇사실상 명맥 끊긴 사모펀드발 적대적 M&A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모펀드 운용사의 적대적 M&A 사례는 많지 않다. 세간 이목을 끌었던 딜들을 살펴보더라도 사모펀드 운용사의 경우 과거 케이스가 많았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적대적 M&A 사례 중 대표 딜은 KKR의 RJR나비스코 인수 건이다. 1988년 딜로 당대로선 천문학적인 금액인 250억 달러가 투입됐다. RJR나비스코는 미국의 식품·담배회사다. 딜 금액에서뿐만 아니라 적대적 M&A 사례로도 오랜 기간 유명세를 날렸다. 딜 프로세스 과정은 '문 앞의 야만인들'이란 유명 서적을 통해 소개됐을 정도다.
RJR나비스코를 인수하려는 KKR과 경영권을 사수하려는 RJR나비스코 간 지분 매입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였다. KKR이 경영권을 인수하며 승자가 됐지만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비싼 밸류에 회사 지분을 매입하는 꼴이 됐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였다. 이후 막대한 차입금 부담 등으로 회사 경영이 악화됐고, 투자 수익률에서도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남겼다.
반면 행동주의를 내건 헤지펀드 운용사들의 적대적 M&A 사례는 최근까지도 꾸준히 등장한다. 미국에서는 2020년 글로벌 부동산 정보·데이터 분석 기업인 '코어로직'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있었다. 투자사인 캐나에홀딩스(Cannae Holdings Inc.)와 헤지펀드 운용사 세네이터 인베스트먼트 그룹(Senator Investment Group)이 경영권 확보를 시도하면서다.
경영권 분쟁을 이어가던 코어로직 측은 2021년 초 사모펀드 운용사인 스톤 포인트 캐피탈과 인사이트 파트너스에 경영권 지분을 약 60억 달러에 매각했다. 새 대주주가 들어오면서 양측의 경영권 분쟁도 막을 내렸다.
딜 자문사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찾아보더라도 헤지펀드 운용사가 적대적 M&A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며 "사모펀드 운용사와 적대적 M&A는 리그가 다른 분야로 간주되는 만큼, 사모펀드가 적대적 M&A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사모펀드발 적대적 M&A 바람, 지속가능성은
국내 적대적 M&A 역사에는 대표적인 두 사례가 꼽힌다. 2006년 행동주의를 표방한 칼 아이칸의 KT&G 투자,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의 SK㈜ 최대주주 등극 등 글로벌 헤지펀드 운용사들의 국내 기업 공격사례가 있었다.
당시 공격자로 나섰던 헤지펀드들은 초반 승기를 잡았음에도 경영권을 가져오는 데에는 실패했다.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탈취라는 프레임으로 인해 국내 여론의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부정 정서를 극복하기엔 국내 네트워크 기반 역시 부실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과거의 경영권 공격 사례와 MBK가 공격자로 등판한 현 분쟁 상황은 차이점이 많다. 국내 정·재계 네트워크가 두터운 MBK를 해외 운용사들과 단순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선 MBK가 최대주주 영풍과 연합해 인수 당위성을 챙겼다. 또한 거버넌스 개선이라는 명분도 확보했다.
MBK는 사모펀드 운용사다. 적대적 M&A를 지속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MBK는 재계 지배구조 약점을 공략하는 스나이퍼로 변신했다. 헤지펀드 운용사들의 무대에 사모펀드 운용사가 나타나 국내 적대적 M&A의 굵직한 족적을 남긴다는 점은 이채롭다. 향후에도 MBK와 같은 사모펀드 운용사가 경영권 분쟁을 강행할 수 있을지가 관전포인트다.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기관투자자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유의미한 금액을 모집할 수 없다면 사모펀드의 적대적 M&A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며 "이번 고려아연 인수 결과가 향후 시장 분위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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