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 연 적대적 M&A 시대]적대적 M&A 순기능 속 따져볼 리스크는④기업가치 정상화·체질 개선 계기, 재계·LP 네트워크 악화 우려도
이영호 기자공개 2024-11-07 08:03:48
[편집자주]
올해 자본시장 최대 이슈 중 하나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다.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게임체인저’로 뛰어들면서 분쟁 판도가 일거에 뒤바뀌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운용사의 투자 이슈가 아닌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투자 대상이 다변화되는 사건으로도 지목된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공격적 M&A 투자 전략이 국내 자본시장에 가져올 영향을 조망한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01일 15: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영권 공격, 분쟁 사례들이 쌓이면서 적대적 M&A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적대적 M&A는 회사 주인인 매도인과의 합의 없이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거래다. 앞서 해외 헤지펀드가 일으킨 경영권 분쟁들은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탈취'라는 프레임으로 규정됐다. '적대적'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 어감도 없지 않다는 평이다.국내에서도 적대적 M&A는 상대적으로 낯설다. 크고 작은 적대적 M&A 시도가 꾸준히 이뤄졌다고는 하나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영권 인수 방식과 비교하면 그 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국내 적대적 M&A가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배경이 거론된다. 학계 M&A 전문가는 "영토가 광활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세 다리만 걸치면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환경이 다르다"며 "공격자와 방어자가 서로 알 수밖에 없는 사이인데, 굳이 분란을 일으켜 상호 관계가 불편해지는 걸 선호하지 않는 문화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인수전은 적대적 M&A에 대한 학계와 업계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IB 업계 내에서도 평가는 엇갈린다.
한 주요 사모펀드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투자 영역을 개척하는 시도가 될 것"이라며 "같은 업계인으로서 MBK파트너스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이해하기 힘든 투자 행태로 업계를 교란하는 행위"라고 혹평했다.
◇적대적 M&A는 절대악? 따져볼 순기능은
적대적 M&A는 운용사가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의 한 방식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선과 악 프레임을 붙일 필요는 없다는 설명도 따라 붙는다. IB 관계자들은 적대적 M&A가 정체된 기업가치를 상승시킬 계기를 제공하고, 산업 생태계를 재편할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한다는 반응이다.
통상적으로 적대적 M&A 타깃 기업은 사업 기반은 탄탄하나 기업가치가 내재가치보다 낮게 책정돼있거나 지배구조에 문제를 안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향후 엑시트 시나리오까지 감안해 매물을 선별하는 탓이다.
적대적 M&A는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주가치를 확대하는 기회다. 새 대주주는 왜곡된 거버넌스, 비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해 기업가치를 높인다. 투자원금 회수와 투자 추가 수익 확보까지 노리기 위해서다. 기존 대주주와 달리 기업가치 관리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순기능이 효과를 발휘한 사례도 여럿 있다. 2012년 칼 아이칸은 넷플릭스와 경영권 분쟁을 불사하며 지분 10%를 매집, 회사 주요 주주로 등극했다. 이후 넷플릭스 경영에 개입하며 글로벌 사업 확대 등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칼 아이칸은 2013년 보유 지분 절반을 매각했고, 2015년 잔여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그 사이 넷플릭스 주가가 폭등하며 20억달러 이상 수익을 냈다.
주주가치 확대도 장점이다. 경영권 분쟁을 위해 공격자와 방어자 모두 지분을 추가 매입한다. 이 때 기존 주주 지분을 더 높은 매입가에 사들인다.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주가는 상승한다. 잠잠했던 주가가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폭등하는 이유다. 이때 주주들은 자신들의 지분을 평소보다 높은 가치에 팔 기회를 얻는다. 특히 기업 주가가 본연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경우라면 효과는 극대화된다.
한 예로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주가가 폭등했다. 주가는 52주 최저가 기준 43만원이었지만 양측 공개매수가 맞붙으면서 154만원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주가 프리미엄까지 붙으면서 상당수 주주들은 사상 최고가 수준에 고려아연 지분을 털어냈다. 두 진영의 진검 승부를 떠나 주주로선 최상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인수비용 과도한 증가, 네트워크 붕괴 우려도
적대적 M&A 단점은 명확하다. 투자 원칙인 '저가 매수 고가 매도'를 어길 가능성이 크다. 공격자와 방어자가 경쟁적으로 지분 매입 경쟁을 벌인 대가다. 인수 당시만 하더라도 적정 가격이라고 판단했던 주가가 알고보니 역사상 최고점일 수 있는 셈이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적대적 M&A로 유명했던 KKR의 RJR나비스코 사례가 '승자의 저주'로 남았다는 분석이다. 1988년 RJR나비스코를 손에 넣기 위해 KKR이 투입한 금액은 무려 250억달러였다. 이후 십수년간 기록이 깨지지 않는 규모였다.
KKR은 공개매수로 당초 주당 90달러를 제시했지만 최종 주당 매입가는 109달러였다. 경영권 방어 전략에 대응하면서 매입가를 올린 탓이다. 이를 위해 적잖은 차입까지 끌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승자는 KKR이 됐지만 고가 인수 대가는 컸다. RJR나비스코가 담배 사업을 매각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KKR 투자기간은 약 10년이었다. KKR의 RJR나비스코 내부수익률은 목표 수익률에 미치지 못한 한자릿수에 머물렀다. 손실은 피했지만 10년이란 긴 시간을 감안하면 실패에 가까운 투자로 평가된다.
적대적 M&A가 늘어날 경우 운용사 평판 리스크 역시 가시화될 전망이다. 특히 사모펀드 운용사의 딜 소싱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계 네트워크다.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대기업에서 떨어져 나오는 우량 매물을 선점해 되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거둬왔다. 재계를 아우르는 탄탄한 관계망 덕분에 가능한 딜이었다. 그러나 적대적 M&A로 이들과의 관계가 손상될 경우 향후 대기업 딜 소싱은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기관투자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지켜본 기관투자자들이 출자 기준을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적대적 M&A와 같은 이슈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도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적대적 M&A로 가해지는 외부 시선이 부담스러운 건 물론이고, 초기 투자 비용이 급증하는 이슈 때문에 수익률 관점에서 불리함이 있다"고 말했다.
IB 관계자도 "고려아연 인수전을 계기로 기관투자자들이 출자 기준에 적대적 M&A 배제 등을 포함한 보다 많은 제한 조건을 걸 가능성이 점쳐진다"며 "적대적 M&A 투자를 뒷받침할 출자 풀이 적시 조성되지 않는다면 펀드레이징 부진, 거래 규모 위축, 딜 불발, 후속 투자 실종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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