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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 연 적대적 M&A 시대]늘어가는 경영권 분쟁, 사모펀드 존재감 커진다③공격자·백기사 등 역할론 주목, 거버넌스 이슈로 신규 투자기회 창출

이영호 기자공개 2024-11-06 08:10:05

[편집자주]

올해 자본시장 최대 이슈 중 하나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다.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게임체인저’로 뛰어들면서 분쟁 판도가 일거에 뒤바뀌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운용사의 투자 이슈가 아닌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투자 대상이 다변화되는 사건으로도 지목된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공격적 M&A 투자 전략이 국내 자본시장에 가져올 영향을 조망한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31일 14: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경영권 분쟁 거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국내 경영권 분쟁 소송 건수는 지난해보다 늘어난 240여건에 달한다는 통계까지 나왔을 정도다. 분쟁 원인은 다양하다. 장기간 누적됐던 오너가 내부 갈등, 대주주가 소수 지분으로 기업을 좌우하던 취약한 지배구조, 억눌린 주가에 터져버린 소액주주 불만 등이 꼽힌다. 목돈을 굴리는 펀드 운용사들은 기업의 취약점을 면밀히 분석한 뒤 경영권 공격을 개시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을 대변하는 키워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왜곡된 시장 환경을 뜻하는 불명예 타이틀이다. 투자 인구 증가로 국내 주식시장은 더 큰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과도 맞닿아 있다. 상장사는 주가 관리를 요구하는 주주 목소리를 마냥 외면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러한 외부 환경과 맞물려 경영권 분쟁은 향후에도 곳곳에서 터져나올 것이란 관측이다. 소액주주 집단행동과 저평가된 주가를 투자 기회로 삼으려는 펀드 운용사들도 물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1994년 국내 적대적 M&A '태동', 2006년 사모펀드발 분쟁 발생

국내에서도 적대적 M&A 사례는 꾸준히 발생했다. 연 평균 2~3건 수준이란 설명이다. 1994년 동부그룹의 한농 인수가 국내 첫 적대적 M&A였다. 한농은 당시 국내 최대 농약회사로 한농 인수 스토리는 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도 유사하다.

당시 한농은 창업주인 정씨 일가와 김씨 일가의 공동 경영으로 40여년 넘게 운영되고 있었다. 공동경영은 선대를 지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경영 일선에서 소외됐다고 느낀 정씨 일가가 동부그룹을 우군으로 섭외, 경영권 분쟁에 돌입하며 판을 뒤집었다. 동부그룹이 추가적으로 한농 지분을 매수하고, 정씨 일가는 동부그룹에 보유 지분을 넘기고 회사에서 물러나는 계획이었다.

동부그룹은 동부제강과 동부건설을 통해 한농 지분 19.8%를 매입했다. 여기에 정씨 일가의 지분 전량인 24.75%를 확보, 지분 44.55%를 쥔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한농을 손에 넣는다는 건 한농에 속한 12개 계열사 경영권까지 따라온다는 의미였다. 이로써 국내 첫 적대적 M&A가 완성됐다.

경영을 주도했던 김씨 일가 측에선 정씨 일가와 동부그룹의 움직임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모르고 있던 경영진은 주총장에서 주주들의 대대적 반발에 직면했다. 당혹한 경영진은 정회 후 대책 논의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이 정씨 일가 측 주주들이 나서 주총을 직접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김씨 일가가 주총무효소송 등을 제기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가 적대적 M&A를 시도한 사례는 2006년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NH투자증권 전신인 우리투자증권의 사모펀드 '마르스 1호'가 샘표식품을 상대로 적대적 M&A를 추진하면서다. 마르스1호는 경영권을 겨냥해 회사 지분을 매입했다. 사외이사 선임, 공개매수 시도 등 여러 카드를 시도했다.

마르스1호는 한때 샘표식품의 최대주주로도 등극했지만 결과적으로 적대적 M&A는 무산됐다. 샘표식품 백기사가 결집한 탓이다. 마르스 1호는 일부 수익을 거두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분쟁 상당수는 회사 내분이거나 전략적투자자(SI) 혹은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이었던 만큼, 재무적투자자(FI)가 제기한 경영권 분쟁은 눈길을 끌었다.

현재 사모펀드 운용사는 더욱 정교해진 전략으로 무장했다. 그간 수많은 적대적 M&A 케이스 스터디를 거쳤고, 자금력 역시 보다 강해졌다. MBK는 압도적 자금력을 갖춘데다 앞선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으로 선행학습을 거쳤다. 이를 토대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선 촘촘한 대응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공격자인 동시에 백기사, '거버넌스 투자' 빛 본다

MBK처럼 적극적으로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 수 있는 하우스는 제한적이다. 어지간한 업력으론 투자금 마련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메이저 사모펀드 운용사 입장에서도 조심스럽다. 복수 대형 운용사 관계자들은 "우리는 기업, 재계와 척질 생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경영권 분쟁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사모펀드 운용사들도 있다. 공격자가 아닌 백기사로서 투자 기회는 충분히 열려있다는 분석이다. 대주주 백기사로 투자하는 전략은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평판 훼손 부담을 덜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방안으로 평가된다. 기존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투자 기회가 새 투자처로 떠오를 전망이다.

실제 사모펀드 운용사는 백기사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올해 상반기 자본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이슈는 한미 오너가의 경영권 분쟁이었다. 지분 경쟁을 위해 재무 파트너가 필요했던 임종윤 형제 측은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들에 자금 조달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진영 역시 자사주 공개매수 재원을 마련코자 베인캐피탈 크레딧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베인캐피탈 크레딧은 백기사로 나서 자금을 댔지만 그렇다고 분쟁의 직접 당사자로 보긴 무리가 있다. 고리 대출을 통한 유동성 공급자 정도로 평가된다. 여론 부담을 줄이면서도 상당 수익률이 보장된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2년 오아시스에쿼티파트너스는 오정강 엔켐 대표 지배력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투자를 단행했다. 회사채 투자로 오 대표 개인 법인에 320억원을 투입하는 구조였다. 오 대표는 지분율을 16%에서 26%까지 올릴 기반을 마련했다. 경영권 분쟁은 아니었지만 선제적으로 상장사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는 투자 케이스다. 올해 엔켐 주가가 폭등하자 오아시스는 투자금 일부를 높은 수익률에 회수했다.

적대적 M&A 시대에서 사모펀드 운용사는 공격자와 백기사 역할을 병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백기사로 나서 분쟁을 조기 방지하는 역할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IB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사모펀드 운용사가 공격자로서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기회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대신 대주주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환경을 활용해 대주주의 백기사로서 투자 기회는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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