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감정 사각지대]화랑·작가·미술관까지…위작 책임소재는⑥반입·반출 시점부터 작품 사진 등 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대두
서은내 기자공개 2024-11-27 09:20:21
[편집자주]
미술품 물납제 시행, 미술품 담보대출 수요 등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감정 서비스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미술품 감정은 미술시장 활성화에 중요한 인프라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미술품 감정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는 업계의 오랜 난제로 되풀이되는 중이다. 때마침 감정 관련 법이 개정되며 정부가 감정체계 손질을 예고하고있다. 더벨은 현재 미술품 감정과 관련된 업권의 논쟁과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고 제도 변화의 방향성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25일 16: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위작 논란으로 드러난 국내 미술품 감정 체계 허점의 책임은 감정 전문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술품 공급, 유통의 각 경로마다 근본적인 책임을 안고 있다는 점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작품 공급의 시작점인 작가에서부터 유통을 담당하는 1, 2차 갤러리, 나아가 미술관까지도 자성을 위한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유통업자 작품 반입·반출 증명 시스템 확립 급선무
위작 문제 대다수의 시발점은 작가, 화랑이 작품의 반입 반출을 증명할 증빙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미술진흥법에서 발급 의무를 명시한 '진품증명서(작품 보증서)' 보다도 위작 문제 해결을 위해 작품 아카이브 구축이 더 급선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품 공급자와 1차 유통업자인 화랑이 작품 사진촬영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만으로도 위작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카이브 구축 면에서 아직 미흡한 중견 작가, 화랑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작가, 갤러리들이 작품을 관리할 수 있는 수장고 프로그램을 정부에서 개발해 배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위작은 크게 보면 원본과 똑같이 그려낸 것, 작가의 스타일로 새로 만든 것 이렇게 두 종류"라며 "새로 만든 작품일 경우 갤러리의 작품 반입 반출 사진 존재 여부만으로 위작 판별이 가능하고, 원본을 베낀 작품 경우 역시 사진 디테일 샷(shot)을 확대하면 차이가 드러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1차 공급원, 작가 차원의 아카이브 관리 필요성
근래 위작 이슈가 유독 몇몇 특정 작가로부터 비롯되는 점 역시 주목할 포인트다. 국내에서 위작 논란으로 많이 오르내리는 이우환 화백도 그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대체로 현존 작가 작품은 작가 확인이 가능한만큼 시비 발생이 적은 반면 이우환의 작품은 현존 작가의 것임에도 논란이 유독 많은 사례다.
위작 문제 발생을 줄이기 위해 이슈가 된 케이스들을 중점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한 갤러리 대표는 "특히 위작으로 많이 이슈가 된 고가작품의 배경을 따져보면 작가 차원에서 관리 소홀을 문제로 삼을 수 있다"며 "제조사(작가)는 책임지지 않고 유통업자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경매시장에서 거래량이 많은 작가 중 상당수는 작가이름으로 된 재단 또는 미술관이 설립돼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야요이 쿠사마, 국내 작가로 박서보 화백의 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재단은 진품 여부에 대해 확인을 요청받을 시 일정 비용, 절차를 거쳐 답변을 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내 대표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의 경우 작품 아카이브 구축에 상당한 공을 들여 재단의 활동을 도모했다. 작가 사후에도 그의 작품을 관리, 관련 자료 아카이브 구축으로 위작 논란에서 빗겨나 있는 상황이다. 김창렬 화백 역시 김창렬 미술관이 세워져 자료 수집을 진행해나가고 있다.
반면 현재 곳곳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우환 화백의 경우 작품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재단 또는 미술관이 없는 상태다. 이우환 화백의 경우 과거 위작 논란이 벌어진 후로 일본 국적으로 국적이 변경된 상태란 점 역시 안타까운 사실이다.
◇ 국립현대미술관에도 무형가치 보존, 보증 역할 요구
일각에서는 국가 대표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무형 자산에 대한 보존 책임 측면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보증할 수 있는 아카이브 구축에 더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내 조각계 1세대 조성묵 작가의 스토리가 언급된다.
2016년 조성묵 작가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도중 사망했다. 당시 작가 친필 사인이 안된 작품들이 다수 남겨졌다. 사인이 없다보니 작품 유통이 어려워져 그 가치가 빛을 잃고 말았던 스토리다. 한 미술계 전문가는 "꼭 지켜내야 할 무형 가치를 지닌 유산의 대상인 경우 국립 미술관 차원에서 작가 사인을 대신할 보증 체계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본다"며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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