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3월 14일 07시1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자기주식 매입액은 12조원을 돌파했다. 1년 새 2배 가량 규모가 늘었다. 반면 기보유 자기주식 소각 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자기주식 신규 매입 기업의 약 절반인 74곳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만 지난해 소각을 실시했다. 상당수는 주식을 단순히 시장에서 거둬들이는데 그쳤다.배경으론 헐거운 규정이 꼽힌다. 지난 2010년대 초 상법 개정에 따라 기업은 자기주식 활용 자유도가 높아졌다. 기존 상법은 자기주식 처분 기한에 대한 별도 규정을 두었으나 법 개정 후 해당 구문은 삭제됐다. 처분 방법 역시 이사회에서 손쉽게 결정할 수 있게 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기주식 매입, 소각까지가 가장 명확한 주주 환원 정책임에도 국내엔 이러한 문화가 희미한 편"이라며 "매년 천문학적 금액의 주식 소각을 진행하는 애플 등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관점 차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주식 처분에 대한 강제력이 없다 보니 당초 목적과 다르게 쓰이는 경우도 빈번하다. 임직원에 대한 보상 용도로 활용하는 경우 등이다. 주가 안정과 주주 가치 제고를 기대 효과로 내걸고 유통 물량을 거둬들였음에도 시간이 지난 뒤 이를 다시 인센티브 명목으로 유출하는 식이다.
근래 주식 보상 제도가 확산되며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올 초 주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내부 구성원에 대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지급 목적으로 잇달아 자기주식을 처분했다. RSU는 기존 스톡옵션과 달리 부여 대상이 자유롭고 절차 등이 까다롭지 않아 최근 활발히 채택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신주 발행에 따른 부대 비용 없이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활용하면 되니 간편하다.
다만 주주의 눈으로 볼 때 이는 약속과 다른 일이다. 결국 언젠가 다시 물량이 시장에 풀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초 주주 가치 관리 차원에서 확보한 주식이었다면 이를 단순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소각 등을 통해 발행 주식 수를 줄이는 방향이 알맞다. 임직원 공로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일이지만 주주를 위해 묶어둔 주식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업은 자기주식을 들고만 있는다고 일이 끝난 게 아니다. 본래 목적대로 쓰일 때 의미가 있다. 눈속임 식에 그치는 게 아닌 실제 의도한 성과를 거둘 수 있게 지속해서 모니터링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 법적 공백을 메우지 않고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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