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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interview]"남심(心)은 없다"…창업주 눈치 안보는 풀무원 이사회김우진 서울대 교수, “이사회는 기업 시가총액으로 증명해야”

김지효 기자공개 2025-03-27 08:23:17

이 기사는 2025년 03월 25일 15시44분 THE BOARD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사진)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해왔다. 특히 상법 개정안 찬반 토론 현장 등 강단뿐 아니라 논쟁의 현장에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현재는 풀무원과 태광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실제 기업 현장에서도 뛰고 있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김 교수는 풀무원 이사회에 대해 할 얘기가 많다고 했다. 그는 풀무원 이사회는 국내 어느 기업의 이사회보다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다. 남심(창업주 남승우 전 사장의 성+心)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다. 이사들이 오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분위기다.

김 교수는 2022년부터 풀무원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3년 간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으며 조만간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연임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풀무원 이사회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 더보드가 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풀무원 이사회 72%가 사외이사… CEO 선임부터 보상 수준까지 결정

풀무원 이사회는 그 구성부터 다른 이사회와 다르다. 풀무원 이사회는 총 11명 중에 8명, 72%가 사외이사다. 사외이사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이사회 안건이 통과되기 어려운 구조다. 일반적인 상장사의 경우 사외이사는 25%만 선임하면 된다. 자산 2조원이 넘는 경우에만 과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하는데 풀무원의 경우 지난해 말 별도기준 자산이 5880억원에 그친다.
더보드는 지난 21일 서울대 김우진 교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위원회도 일반적인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2조원이 넘는 상장사일 때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 등 2개를 의무로 둬야 한다. 하지만 풀무원의 경우 이사회 산하에 총 8개의 소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경영위원회, 보상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사외이사 평가위원회, 감사위원회, 전략위원회, ESG위원회, 총괄CEO 후보 추천위원회 등이다.

눈여겨봐야 할 건 보상위원회다. 풀무원은 사외이사로만 꾸려진 보상위원회를 통해 CEO를 비롯한 등기임원의 보수 및 보상, 퇴직금 등의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 풀무원처럼 보상위원회를 두고 있는 국내 기업은 10%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금융회사는 보상위원회 설치가 의무적이나 일반 기업은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미국 기업의 이사회를 보면 가장 중요한 기능이 CEO의 선임 및 해임이고 두 번째가 보상 수준 결정”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CEO 선임과 해임이 어렵다면 보상위원회를 통해 CEO들이 이사회를 신경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상위원회 설치와 이사회 운영을 전담해 지원하는 이사회사무국 설치 등은 정부가 설치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유인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풀무원의 이사회는 미국 기업의 이사회처럼 CEO 선임까지 맡고 있다. 올해 초 선임된 이우봉 총괄CEO는 이사회 산하 총괄CEO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1년간에 걸친 후보 추천과 심사와 검증, 선정 등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발됐다.

CEO 선임 과정에서 창업주이자 이사회 멤버인 남승우 전 사장의 의사가 반영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남 전 사장이 이사회 멤버로서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평소 이사회에서도 남 전 사장은 가능하면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이사회 멤버들의 결정에 따른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풀무원 이사회는 ‘남심(창업주 남승우 전 사장의 성+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남 전 사장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책임경영 차원일뿐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은 이후로는 이사회에서 말도 많이 하지 않고 다른 이사들에게 결정을 맡긴다”고 강조했다.

◇”이사회는 의회와 같아… 일반주주 대표성 중요”

그는 사외이사를 맡으면 해당 기업의 주식을 꼭 보유한다. 이는 ‘이사회와 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야한다’는 그의 철칙에서 비롯됐다. 그가 보유한 주식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풀무원 보통주 1662주, 태광산업 보통주 10주 등 모두 더하면 약 3400만원어치다.

김 교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도 강조하는 철칙”이라며 “주가를 보고 경영해야 한다고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내 보상이 주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더 신경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이사회는 기업가치, 즉 시가총액 상승을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며 “이사회가 경영을 통해 펀더멘털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가를 올리는 것이 핵심 가치”라고 강조했다.

‘3%룰’로 이사회에 입성한 만큼 일반 주주를 대표해야 한다는 인식도 강하다. 김 교수는 풀무원과 태광산업 모두 분리선출 방식, 이른바 3%룰을 통해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3%룰은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가 의결권 있는 주식의 최대 3%까지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을 말한다.

김 교수는 “내가 누구를 대표하는지에 대한 의식이 중요하다”며 “3%룰로 선임이 된 만큼 최대주주가 아닌 일반 주주를 대표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장사는 주주들이 직접 경영진을 관리·감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사회에 그 역할을 대신 맡기는 것”이라며 “대의 민주주의의에서 의회와 같은 역할을 이사회가 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대표하는 것처럼 일반주주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외이사가 일반주주의 대표성을 띄기 위해서는 추천 경로도 중요하다. 김 교수는 “아직까지 많은 국내 기업들이 창업주 일가의 추천을 받아 사외이사를 선임한다”며 “그렇게 선임된 사외이사들은 창업주와 기존 경영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일부 기업에서만 행해지고 있지만 주주 추천을 통한 사외이사 선발도 훌륭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인이 사외이사로 다른 회사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김 교수는 “한국은 동종업계가 아닌데도 정서적으로, 제도적으로 현직 기업인의 사외이사 겸직이 어렵다”며 “기업인이 사외이사를 겸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센티브 제공 등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이사회의 기능과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기에 사회적으로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삼성전자 CEO를 누가 뽑을 것인지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며 “한국의 여러 기업들도 창업주 이후 3세, 4세로 넘어가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창업주 일가가 창업주의 지분은 물려받더라도 CEO 지위를 승계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풀무원 사외이사를 다시 맡게 된다면 재무구조 개선을 진행해 더 탄탄한 기업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풀무원 이사회가 한국의 기업들에게 이상적인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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