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interview]사외이사의 조직혁신…이유 있는 파크시스템스의 도약올 3월 임기 만료 앞둔 전상길 사외이사…"인사·조직 제도 업그레이드"
이돈섭 기자공개 2025-03-17 08:23:05
이 기사는 2025년 03월 13일 09시21분 THE BOARD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나노계측기기 전문기업 파크시스템스는 이사회 경영을 잘하기로 소문이 난 기업 중 한 곳이다.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 5명 등 총 6명의 이사로 꾸려진 이사회는 분기에 한 번 이상 서너 시간에 걸친 장기간 토론을 펼친다. 변호사와 회계사, 기술 전문가, 교수로 구성된 사외이사들은 자기 전문성을 통해 향후 성장 전략 등을 조언한다. 파크시스템스는 2015년 코스닥 상장 이후 연평균 30% 이상 영업이익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파크시스템스의 실제 이사회 풍경은 어떨까. 2019년부터 올해로 6년째 이사회에 적을 두고 있는 전상길 한양대 경상대학 교수를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오래된 인연을 바탕으로 이사회에 진입한 전 교수는 스스로 파크시스템스에 애정을 갖고 자기 전문 분야 중심으로 기업 성장에 필요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전 교수는 그가 6년간 이사회에 건의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인터뷰 때 소개하기도 했다.
◇ "수술에 성공해도 환자를 죽여선 절대 안 된다"
전상길 교수는 인사·조직 분야 전문가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인사·조직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한양대 경상대학 전임교수로 임용돼 올해로 30년째 재직하고 있다. 전 교수는 이른바 '산업 연계 문제 기반 학습법(Industry Coupled Projected Problem Based Learning)' 방식을 고안한 인물로 '학연산 클러스터 모델'을 표방하고 있는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파크시스템스와의 인연은 한 신문기사에서 시작했다. 스탠퍼드 대학교 물리학 박사 출신이 미국에서 기업을 창업하고 성장 궤도에 올려놓은 뒤 이를 매각, 귀국 후 다시 창업의 길을 걷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파크시스템스 측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박상일 대표를 강연자로 초빙한 것이 계기였다. 박 대표는 이후 매년 한두 차례 한양대 대형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 기업 경영과 관련한 다양한 얘기들을 나누곤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박 대표가 현 국민의힘 전신인 당시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일도 두 사람 인연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박 대표 주변 대부분은 정계 진출에 대해 축하 메시지를 보냈지만, 전 교수는 박 대표의 정치 활동을 만류했다. 박 대표의 올곧은 성품을 봤을 때 경영인으로 남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하지 않은 이슈가 일어 정계 진출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박 대표는 전 교수의 조언을 생각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전 교수와 박 대표 간 오랜 신뢰 관계는 2019년 사외이사 섭외로 이어졌다. 당시에도 파크시스템스는 국내 대표적 강소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혹시 거수기 역할을 해야 한다면 그럴 생각은 없고 외부 전문가로서 회사에 꼭 필요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는 전 교수 말에 박 대표는 "우리 조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말 터무니없는 얘기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그리고 마음껏 해주시길 바란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파크시스템스가 인사·조직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도 전 교수 사례가 처음이었다. 2019년 전 교수가 이사회에 합류하기 전까지 파크시스템스는 주로 기술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그간 기술적 성장을 달성한 데는 이사회 멤버의 노고가 있었으리라.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전 교수는 관리적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지적 산출물은 소통에서 비롯된다"는 게 전 교수의 철학이다.
이사회 활동도 마찬가지다. 전 교수는 "사외이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수술은 성공하더라도 환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면서 "자기 전문성을 가진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자기 전문성만 주장해서는 안 되고, 한발 양보해서 그 기업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언을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사회가 풍부한 다양성을 확보하고, 그 다양성을 전제로 활발한 토론이 이뤄질 때 최적의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 파크시스템스 조직 업그레이드, 고속성장 이바지
실제 전 교수는 지난 6년간 매 이사회에 참여하며 인사·조직 분야 조언을 잊지 않았다. 파크시스템스 경영진은 전 교수 의견을 면밀히 검토해 대부분 실행에 옮겼다. 최고인사책임자(CHO) 직을 신설하고 사업부 단위로 조직을 개편했으며 인사 평가 시 서로의 협력 성과 항목을 만들고 여성 임원 비중도 확대했다. 전국에서 교수진을 섭외해 임직원 대상 맞춤형 미니MBA 과정도 개설, 외부 지식을 조직 내부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경기도 과천시 신사옥 착공에도 전 교수의 역할이 상당했다. 파크시스템스는 다원시스와 함께 과천시 용지를 분양받아 신사옥 건설을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다원시스 측과 갈등이 불거져 법적 공방 직전까지 치달은 적이 있었다. 다원시스 측과도 인연을 튼 다른 사외이사 소개로 전 교수가 두 기업 사이 중재에 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신사옥 건설 첫 삽을 뜨게 됐다는 후문이다.
해외 법인 인사를 선임하거나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때도 파크시스템스는 이사회 의견에 귀기울였다. 파크시스템스는 기본적으로 분기에 한 번 이상 이사회를 개최하는데, 한 번 이사회를 열 때마다 분기 성과 보고와 함께 미래 전략 등을 논의하며 4시간 안팎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정기 이사회가 열리지 않아도 박 대표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은 각 분야 사외이사에 수시로 연락해 현안에 대한 조언을 구하곤 한다.
전 교수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게 만들 때 위대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기업 내 각 사업부 간 협력 관계를 구축해 기술 혁신이 일어날 수 있게 돕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면서 "기업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의 구조화"라고 말했다. 이어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가 우리나라 산학협력의 메카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 노력해 온 경험이 이사회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고도 덧붙였다.
전 교수가 이사회에 재직한 6년 간 파크시스템스는 많게는 385억원(2024년) 적게는 80억원(2019년)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꾸준히 성장 궤도를 그려왔다. 이 시기 코로나19 발발에 따른 경기 침체 기간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다. 같은 기간 주가 역시 7배 가까이 올랐다. 현재 사외이사 절반 이상이 보수 일부를 주식으로 받거나 자발적으로 주식을 매입했는데, 이 주식 가치 역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기술혁신 경영 전략 변화는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기업이 고객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기술 고도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사회 기능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전 교수는 "사외이사에 필요한 것은 전문성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이사회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서 "리드(Lead)와 헬프(Help), 체크(Check) 3요소가 두루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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