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추진 중인 현대IFC 매각이 다시 궤도에 올랐다. 작년 하반기 구조조정 일환으로 매물로 나왔지만 별다른 반응 없이 묻혔던 딜이다. 하지만 현대제철의 미국 제철소 투자 계획 발표 이후 업계 3위 동국제강과 협상에 들어가며 자금 확보 수단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대제철의 대미 투자가 철강업 재편에 불을 지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표면적으론 자금 확보 흐름에 편승해 여기저기서 움직임이 나오는 듯하지만 국내 철강사들도 각자 투자 전략을 정비하며 분업과 협력 구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동국제강 "인수 검토 중"…설비 연계 가능성 등 시너지 충분
1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자회사 현대IFC를 매각하겠다는 제안을 동국제강에 전달했다. 동국제강은 “사업적 효용성과 재무적 조건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IFC는 금속을 일정 온도로 가열한 뒤 해머 등으로 압력을 가해 형상을 만드는 단조 공정을 맡는 현대제철의 100% 자회사다.
현대제철은 작년 10월 처음으로 현대IFC 매각을 타진했다. 당시 삼정KPMG를 매각 주관사로 지정하고 조용히 수요 조사를 진행했다. 다만 철강업계 전반의 구조적 침체로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던 사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급할 이유가 없었다. 현대제철은 3년 평균 에비타가 2조5000억원에 이르고 작년 말 기준 현금성자산도 2조1000억원을 웃돌았다. 단기차입금 1조2100억원과 비교하면 여력도 충분했다. 현대IFC는 그룹 내 수요 기반이 약한 특성상 구조조정 관점에서 ‘정리되면 좋을 것 같다’ 정도로 느슨하게 우선순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미국 루이지애나에 전기로 제철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8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그룹이 분담하더라도 현대제철은 핵심 투자자다. 내년 봄 착공을 앞둔 시점에서 몸값 25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는 현대IFC는 현금 마련에 유용한 카드로 다시 떠올랐다.
실탄 확보가 급해진 상황에서 현대IFC 매각은 지금이 적기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매각 제안을 받은 동국제강은 전기로 중심 제강사로 인수 시 기존 설비와의 연계가 가능하다. 부가가치 강재 수요도 있어 실수요가 뒷받침된다.
현대제철 측은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며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 밝혔다.
(현대IFC 본사 모습)
◇현대제철 대미 투자, 내부 재편과 철강업 구조 변화 이끈 ‘이중 촉발점’
철강업계 2위와 3위가 자회사 매각을 두고 협상에 들어가면서 업계는 현대제철의 대미 투자가 촉발한 구조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철강사들이 현대제철의 조달 흐름에 발맞춰 전략을 조정하면서 분업과 협력의 구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제철은 현대IFC 매각에 이어 후순위 카드로 강관 자회사인 현대스틸파이프도 동국제강에 매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회사 역시 그룹 내 수요처가 거의 없어 지난해부터 구조조정 후보군에 포함돼 있던 곳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강관 수요가 늘면서 동국제강이 인수에 눈길을 돌릴 만한 환경이 조성됐다. 현대제철이 대미 투자에 집중하는 사이 동국제강은 현대IFC에 이어 현대스틸파이프까지 품에 안고 외형 확장과 수출 기회까지 동시에 점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포스코는 현대제철의 미국 제철소 프로젝트에 지분 투자 방식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제철은 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부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고 미국에 생산 기지가 없는 포스코로선 조인트벤처 방식이 현실적이다. 현대차 강판 공급망에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트럼프 2기 고율 관세 가능성과 중국발 공급과잉 우려까지 더해지며 업계 재편은 더욱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다. 포스코는 미국 외에도 인도에서 JSW와 손잡고 일관 제철소를 추진 중이다. 동국제강은 아주스틸 인수 후 자회사 동국씨엠과 시너지를 내며 컬러강판 중심으로 전략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대미 투자 발표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 사진 오른쪽 끝에는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백악관 유튜브 중계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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