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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장세욱의 싸움

이호준 기자공개 2025-04-10 07:16:02

이 기사는 2025년 04월 08일 07시5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요즘 같은 때 조용해 보이는 철강사가 있다면 그건 사정이 괜찮아서가 아니다. 속절없어 가만히 있는 것이다.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중국산 저가 물량과의 경쟁부터 막막하다. 트럼프가 돌아온 미국은 공장 지어달라며 손 내미는데 얇은 곳간을 생각하면 선뜻 움직일 수 없다.

밖에서 보는 눈이나 안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장세욱 동국제강그룹 부회장은 최근 주총 전 기자들과 만나 “저희가 언론 프렌들리 기업인데요. 오늘은 꼭지(기삿거리)가 없어요”라며 웃었다. 이내 눈에 띌 만한 투자나 자사주 소각 계획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의 말엔 상황 인식이 녹아 있었다. 계속된 불황과 글로벌 관세 전쟁 속 장 부회장이 고른 단어는 ‘싸움’이었다. 그는 “동국씨엠이 문제이긴 한데요. 이제 오픈 경쟁이니까 잘 싸워봐야죠”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고민은 현실적이다. 문제로 지목된 동국씨엠은 철에 색을 입힌 컬러강판을 만든다. 국내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이고 미국에는 생산 거점이 없어 관세를 그대로 맞는다. 원재료 비중이 높은 탓에 ‘잘 쳐줘야 2000억’짜리 비즈니스라는 지적도 많은데 관세까지 더해지면 마진은 더 깎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대야 할 존재다. 그룹의 본체 격인 동국제강은 주로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철근·H형강 등을 만든다. 구조적으로 돈이 안 되는 품목은 아니지만 건설 경기에 따라 실적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시황이 되살아나기 전까지 동국씨엠이 버텨줘야 그룹 전체가 숨을 돌릴 수 있다.

‘잘 싸우기’ 위한 준비는 조용히 시작됐다. 지난해 8월 인수한 컬러강판 업체 아주스틸이 그 교두보다. 아주스틸은 멕시코에 생산공장과 사무소 등을 두고 있다. 동국씨엠에는 없는 폴란드 생산기지도 있다. 글로벌 관세를 피할 순 없지만 이 거점을 통해 수출 확대의 발판은 마련됐다.

업계는 아주스틸의 설비는 뛰어난 반면 불황 덕에 인수가가 낮았다고 본다. 동국씨엠은 그런 회사를 싸게 품에 안으며 단숨에 생산량 기준 세계 1위 컬러강판 업체로 올라섰다. 진짜 경쟁은 기존 계약이 끝나고 가격 재협상이 시작되는 하반기부터겠지만 어수선한 흐름이 오기 전에 일단 전열은 착실히 갖췄다.

싸움을 입에 올린 이도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장 부회장은 동국씨엠의 전신인 유니온스틸 사장 시절 고급 브랜드를 직접 일궜다. 회장 공백이라는 위기에서 그룹도 지켜냈다. 쉬운 길만 걷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잘 이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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