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3년 08월 08일 07: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매 분기가 지나고 한달여 뒤부터 상장 기업들의 실적발표가 시작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국내 대표기업의 실적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만 각 업종 2등 기업의 실적을 관전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올해 들어 관전평을 흡족하게 써 줄 만한 기업은 매일유업과 OB맥주다.유업계의 쌍벽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은 올해 지옥과 천당을 서로 맛보고 있다. 우선 매출액(연결기준)이 역전됐다. 1분기 기준 남양유업은 3056억원이고 매일유업은 3342억원이다. 작년 1분기에 남양유업이 3276억원이었고 매일유업이 2615억원이었다. 분기별 뿐 아니라 연간으로도 여간해서 이기지 못하던 남양유업을 영원한 2등 매일유업이 매출액에서 따라잡은 것이다. 두 기업 모두 올해 2분기 실적 발표를 아직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갑을논란'으로 타격을 받은 남양유업의 매출은 더욱 줄고 매일유업은 반사이익을 봤을 것으로 추정돼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2등이 1등이 되고, 1위가 2위로 추락하는 사례는 기업들의 실적 발표 시즌이 되면 종종 목격된다.
상장 기업은 아니어서 공식 실적발표를 하지는 않지만 올해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어 주목받는 기업 중 한 곳은 OB맥주다. OB맥주의 실적은 역으로 하이트맥주의 실적을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하이트진로홀딩스에 따르면 16년간 예전 조선맥주(현 하이트맥주)에 밀려 2위로 처져 있던 OB맥주는 지난해 점유율(한국주류산업협회 연도별 과세기준 출고실적)에서 56 대 44로 하이트맥주를 앞서더니 올해 들어 그 격차를 더욱 벌렸다. 2월까지 OB맥주와 하이트맥주의 점유율은 59 대 40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변방에 처져있던 현대·기아차가 일본 자동차 기업을 맹추격하고 있는 것이나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밀어내고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른 것도 넓게 보면 '2등의 반란'이다. 이런 2등의 반란을 지켜보는 재미는 여간 흐뭇한 게 아니다. 식사 자리에서나 술자리에서 한참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는 게 '역전의 비결'이다.
여러 이유가 있다. 사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간 명암은 전통적으로 경쟁하던 우유시장에서 갈린게 아니다. 실적을 뜯어보면 비주력사업에서의 성과가 서로의 희비를 갈랐다. 남양유업은 '프렌치카페'로 잘 알려진 커피믹스로의 매출 다각화에 주력했다. 매일유업은 음료와 외식 사업에 눈을 돌렸다. 결과만 놓고 보면 현재까지는 매일유업의 다각화 전략이 빛을 발하고 있다. 물론 2분기 실적이 나오면 우유 시장의 대전(大戰)도 2분기에 어떠했을지 궁금해진다.
하이트진로그룹은 소주 사업을 함께 벌이는 종합주류업체다. 그래서 OB맥주와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소주 시장에서 '진로'의 점유율은 여전히 과반이 넘는다. 그러나 맥주에 국한된 시각임에도 OB맥주 임원이 들려주는 역전의 비결은 흥미롭다.
"주류의 유통 순환 주기를 약 1주일로 줄였다. 맥주도 시간이 지나면 김이 빠진다. 순환 주기를 줄이면 소비자들은 맥주를 더 신선하다고 느끼게 된다. 제품의 유통 주기를 줄이자 처음엔 재고가 쌓여 내부에 반발이 많았다. 그러나 CEO가 밀어부쳤고 어느 순간부터 역전이 됐다."
OB맥주 CEO의 눈 앞엔 재고자산 증가에 따른 단기간의 재무 수치 악화보다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OB맥주의 신선함이 더 절박했을 지 모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웹 브라우저 '익스폴로러'를 잡은 구글의 '크롬', '피죤'을 따라잡은 '샤프란', '미샤'의 자리를 빼앗은 '더페이스샵' 등 2등의 반란은 계속된다. 공통점은 소모적 경쟁보다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경쟁을 해 이겼다는 점이다.
올해 실적 발표에선 또 어떤 2등 기업이 우리를 놀래켜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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