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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버랜드, 지주회사 '버퍼' 갖게 됐다 [지배구조분석-삼성그룹①]지주사 강제전환 방지 효과..역설적으로 지배구조 개편 꾀할수도

문병선 기자공개 2013-10-14 10:19:26

이 기사는 2013년 10월 04일 09: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특정 기업 자산을 100이라고 가정할 때 자산 중 50 이상이 자회사 주식이라면 이 회사는 자회사 지배 목적이 큰 기업으로 보고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회사로 강제지정된다. 요즘 많은 기업이 지주회사로 스스로 전환하려 하지만 그 반대로 공정거래법의 이런 조항을 피해 지주회사 강제지정 요건을 회피하는 기업도 없지 않다.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인수한 것도 '지주회사' 관점에서만 보면 회피 목적이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사실 회피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버퍼(Buffer)'를 갖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지주회사 강제 지정 요건을 마주한 기업이 자산을 늘리는 건 '버퍼'를 갖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며 "자산이 늘어날 수록 지주회사 강제 지정 가능성은 낮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에버랜드는 대략 1조1000억원 가량의 자산을 갖고 있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인수한다. 하지만 양수 대가로 현금을 지급해 늘어나는 자산은 없다. 그럼에도 삼성에버랜드는 결국 자산 증가 효과를 갖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패션사업부가 에버랜드로 이전해 와 매출이 늘어나고 매출채권이 늘어나면 그만큼 자산이 증가하게 된다"며 "수익이 날 경우에는 증가폭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삼성에버랜드 자산에서 삼성생명이 차지하는 비율

삼성에버랜드는 올해 상반기말 기준 추정 지주비율(자회사주식가액합계액/자산총액)이 56.96%다. 자회사는 삼성생명만 포함시켰다. 지주비율이 50%가 넘는다는 건 삼성에버랜드 자산에서 절반 이상이 삼성생명 주식이라는 의미이고, 이 상태라면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강제 지정 요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 1대주주가 아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생명 1대주주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자회사 주식가액을 구할 때 1대주주인 자회사만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삼성에버랜드는 지주회사로 강제지정될 위험은 없다. 강제지정되면 일반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다는 법 규정 때문에 삼성생명을 매각해야 하지만 그럴 위험이 없다는 뜻이다.

위험성이 없음에도 늘 삼성에버랜드는 지주비율을 신경써야 했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주식인도 소송 결과 최악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을 내줄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또 이건희 회장이 보유 중인 삼성생명 지분을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증여할 경우 증여세 납부를 위해 지분을 팔아야 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건 삼성생명 1대주주가 바뀔 가능성이 있어 모니터링을 늦추기 어렵다.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인수는 이런 위험성에 대한 '버퍼'를 제공한다.

즉 삼성에버랜드는 지주비율 계산식(자회사주식가액합계액/자산총액)에서 분자의 증가를 대비해 분모를 늘 늘려놓아야 하는데,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영업양수로 해결했다는 해석이다.

지배구조 관련 다른 전문가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영업양수도에 이어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 등 굵직한 자본거래가 발표되면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다"며 "두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한데, 첫째 지배구조를 바꿀 것이고 둘째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최상위 지배구조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 강제전환 버퍼를 갖게 됐다는 건 지배구조를 뜯어고칠 의지가 없다는 뜻을 우선 함축하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와 연관이 없다"고 말해 왔다. 회계법인 다른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딜을 진행하는 편이라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지만 금산분리와 같은 현행법 체제가 바뀌지 않는한 지배구조는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주회사 전환 관련 자산의 '버퍼'를 갖추게 되면서 에버랜드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낮아졌다.

반면 정반대로 본격적인 지배구조 변화 신호탄으로 보는 해석도 많다.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양수로 에버랜드가 '버퍼'를 갖춘 건 삼성생명 1대주주의 변화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증여, 또는 삼성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 추가 취득 등 가능성이다.

삼성생명은 현재 1·2대 주주간 지분율이 1.42%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이건희 회장이 20.76%를, 삼성에버랜드가 19.34%를 갖고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을 추가로 취득한다면 이는 적극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행보로 읽을 수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추후 삼성그룹의 행보가 더 나와야 변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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