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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은 왜 워커홀릭이 됐을까 [강종구의 Question]

강종구 기자공개 2014-03-07 08:51:38

이 기사는 2014년 03월 06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밸류자산운용의 이채원 부사장은 자신을 '주식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골프를 치지 않고 운전면허도 따지 못했다. 외제차를 몰고 비싼 와인을 즐길 것 같은, 흔히 상상하는 화려한 펀드매니저의 세계에 최소한 그는 없다. 심지어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메일을 보내본 적 없고 어떻게 보내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이채원이다.

그가 최근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휴대폰의 문자 전송 기술을 익혔다. 늘 바쁜 사람이니 통화도 쉽지 않을테고 이런 저런 연락을 할 일이 많을텐데, 문자메시지를 쓸 줄 모르는 남편과 아빠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그의 말이 걸작이다. 문자 전송법을 알게 된 걸 후회한단다. "하루에 한 시간을 공부하면 연간 수익률이 1%이고, 하루에 10시간을 공부하면 연간 10%의 수익을 올립니다. 10시간은 공부해야 하는데, 이미 알게 된 걸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아까워 죽겠어요" 하루에 문자를 주고 받는데 소비하는 30분은 연간 0.5%의 수익률의 손해인 게 셈법인 사람. 그는 분명 일에 미친 사람이다.

가치투자의 전도사, 한국의 워런 버핏(이 부사장은 자신의 롤 모델이 버핏이 아닌 피터 린치라고 했다)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한국 자산운용업계 최고의 스타가 되어버린 통에, 얼굴을 비추어야 할 곳도 많고 각종 강연이나 언론사 행사에 단골로 불려 다닌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판인 그가 일 년에 무려 1500차례의 기업 탐방을 다닌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재작년에는 1680회를 다녀왔다고 한다. 솔직히 곧이 들리지 않는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일 년을 300일 잡고 하루에 다섯 곳 이상의 기업을 방문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아마도 그의 팀 전부의 탐방 수를 더한 것이 아닐까 슬쩍 의심을 해 보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발품이다. 팀 전부가 일에 미쳐 있음에 틀림없다.

한국밸류의 펀드들은 최고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아니 예전에도 늘 시장을 훨씬 웃도는 높은 수익을 냈지만 이제서야 제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느낌이다.

짐작컨데, 늘 잘했지만 1등인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화려한 주식형 펀드는 늘 강세장에서 탄생한다. 1999년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 펀드가 그랬고, 2007년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가 그랬다. 강세장에서 엄청난 돈과 인기를 누리며 신화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끝까지 좋았던 역사적 사례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장이 고꾸라지면 마치 낙엽이 지듯 투자자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안기고 원망 속에 잊혀져 갔다.

바이코리아 펀드가 잘 나갈 때는 3일 연속 3조 원의 돈이 밀려 들어왔다. 국내 자산운용업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워낙 한꺼번에 많은 돈이 들어오니, 펀드매니저가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 아무 주식이나 500억 원어치 사달라고 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는 2주 동안 4조 8000억 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돈의 힘은 무서워서 인사이트가 샀다는 사실 만으로 그 종목의 주가는 급등했다.

그러나 한국밸류의 소위 '이채원펀드'에는 돈이 몰려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밸류의 첫 펀드이자 대표적인 펀드인 한국밸류10년투자증권 1호는 2006년 4월 설정 후 올해초까지 155%, 8년 평균 19.1%(주가가 지지부진했던 지난해에도 19.4%의 수익을 냈다)의 빼어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순자산총액은 1조 원을 조금 넘는다. 하루에 100억 원 정도의 개인 돈이 들어온다고 한다. 요즘 같이 자산운용업계가 불황인 때 그 정도면 남들의 부러움을 살 일이지만 바이코리아나 인사이트에 붙었던 '열풍'이나 '신드롬'은 아니다.

얼마 전 만난 자산운용업계 한 분은 "2007년의 실패가 우리나라 자산운용시장을 10년은 후퇴시켰다"고 했다. 전세계가 사상 유례없는 거품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을 때 한국의 투자자들을 열광하게 한 것은 중국과 베트남 등에 투자하는 해외투자펀드와 세상 모든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며 세련되고 화려한 광고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인사이트 펀드였다. 증권사들의 대대적인 세일즈가 따라붙었고 투자자들은 홀린 듯 몰려들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자 모든 것은 꿈이었고, 그 이후 펀드는 믿을 수 없는 상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대체 왜 전혀 뜨겁지 않은 이채원의 펀드는 계속해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뜨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10시간씩 27년을 공부하고 일년에 1500회의 탐방을 가는 사람이 어찌 평정심을 잃고 뜨거울 수 있을까. 얼마나 자신을 경계하고 조심하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다. 이채원 부사장이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가가 폭락하면서 초기 투자자 중에는 재작년까지도 원금을 손해 본 분들이 몇 분 계셨어요.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이제 그 분들도 30~40%씩 이익을 보고 계십니다"

그는 자신을 믿고 돈을 맡긴 고객들이 손해를 보는 게 참을 수 없이 싫다고 했다. 차이니즈월 때문에 고객이 누구인지, 개개인의 수익률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펀드자금의 유입시기에 따라 손해 본 고객이 있는지 늘 살피는 버릇이 들어 있는 듯 했다. 손해를 보는 고객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그것이 그를 워커홀릭(workaholic)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투자자들을 다시 펀드로 돌아오게 하는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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