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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정공 사장의 해진 서류가방 [thebell note]

윤동희 기자공개 2016-04-04 10:16:27

이 기사는 2016년 04월 01일 09:3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유암코가 우여곡절 끝에 민간 주도 기업 구조조정 업무에 첫발을 내딛었다. 지난달 말 유암코와 채권은행은 오리엔탈정공 채권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체결일에 맞춰 금융위원장은 8개 은행 구조조정 담당 부행장을 유암코 본사로 소집해 앞으로 유암코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는 오리엔탈정공과 그 자회사의 사장도 참석했다.

이날 정말 중요한 장면은 회의 후에 벌어졌다. 회의가 끝나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금융위원장과 부행장, 기자와 여타 관계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복도에는 유암코 담당자와 회사의 사장 두 명이 덩그러니 남았다. 담당자는 사장에게 기왕 오신 김에 조금 기다렸다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러자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계약이 체결 된 겁니까?"

이제 회사가 괜찮아질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의중을 알아들은 담당자가 답했다.

"네, 잘될 겁니다."

사장은 두 손으로 서류가방 손잡이를 꼭 쥐었다. 가방 모서리마다 가죽이 하얗게 해져 있었다.

사장이 닳고 닳은 가방을 들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유암코에 기업 회생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장면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렇게 요란스럽게 추진돼왔던 민간 주도 구조조정의 '본질'이 눈앞에서 재연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소란을 떨었을 뿐, 회사가 어디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오리엔탈정공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성과이거나 거래대상이고 본보기이며 취재거리 혹은 하나의 일정에 불과했던 탓이다. 특히 언론은 회사 규모가 너무 작고 추진 속도가 더디다며 유암코와 당국, 은행들을 괴롭히는 데 열중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의 본질은 투자기법이나 이해관계자, 시기와 절차에 있지 않았다. 중요한 건 회사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던 구조조정의 짐을 현실에서 지고가는 주체는 행사가 끝나고 덩그러니 복도에 남았던 사람들이다. 구조조정의 본질은 '다음 일정'이란 없는, 회사 하나를 살리기 위해 가방의 모든 모서리가 닳고 닳을 때까지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에 있었다.

이성규 유암코 사장은 한번 기자간담회에서 부실 기업의 회생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 첫 기준은 업황이나 현금창출능력 같은 게 아니라 경영진의 태도였다. 이 사장은 "현재 경영진이 회사 갱생에만 관심이 있고 한눈을 팔지 않는 데서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리엔탈정공 임직원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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