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5월 18일 07:1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상선이 오늘 운명의 날을 맞이한다. 주요 선주를 모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담판을 짓는다. 당일에 결론이 날 수도 있고 다음주로 미뤄질 수도 있지만 생사의 기로에서 열리는 협상임에는 변함이 없다. 용선료 인하가 되지 않으면 회사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게되며 인하에 성공할 경우 (해운동맹을 찾는다는 전제 하에) 기사회생하게 된다. 정부로부터 1만3000TEU 급 초대형 선박 지원도 받을 수 있다.지난해 해운업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부터 이 산업을 국가적으로 살려야 하느냐, 시장논리에 따라야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정부는 회사채 신속인수제 지원 등으로 많은 혜택을 줬기 때문에 일단 스스로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대편에서는 해운업이나 조선업이 국방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산업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상선은 아예 해운업이 '제4군' 역할의 산업이라고 공공연하게 설명한다. 이 회사는 최근 공시한 분기보고서 상단에 "해운업은 국가 비상사태 발생시 군수품 및 전략물자, 병력을 수송하는 등 육/해/공군에 이어 제4군의 역할도 맡고 있다"고 기재했다. 국가적으로 그만큼 중요한 산업이니 정부가 살려야 한다는 게 기저에 깔린 뜻이다.
사실 이러한 현대상선의 주장이 크게 억지스러운 것은 아니다. 현대상선의 영문사명은 Hyundai Merchant Marine이다. 줄여서 HMM이라고 쓴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머천트 마린(Merchant Marine·상선)'이라는 단어는 통상 평화 시에는 일반 물품을 나르지만 전쟁 시에는 해군 보조(naval auxiliary)로서 병력과 군수물품 나르는 함대(또는 선단)의 의미를 지닌다. 세계 제 1, 2차 대전을 계기로 만들어지고 통용되기 시작한 미국의 연방법 머천트 마린 액트(Merchant Marine Act·일명 존스 액트)가 그 법적 기반이 된다. 자국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강력한 법이다.
한 구조조정 업계 관계자는 "6.25 전쟁 때도 국내 선박은 대부분 정부 물자, 군수품을 운송하는 데 투입됐다"며 "해운업은 조선업과 함께 범 방위산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전쟁 때 선박들이 정확히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전시에 국적선사가 맡을 역할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 있다.
물론 국내에도 전시에 국가가 선박을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국제선박등록제도가 있긴 하지만 미국의 머천트 마린 액트와 같이 포괄적으로 해운사를 해군 보조로 활용할 수 있는 법은 없다. 미국과 한국의 전략적 판단은 다르다. 관계자들 말처럼 해운사는 제4군일 수도 있고, 시장 시각처럼 그저 바다 위에서 물품을 나르는 수송업체일 수도 있다.
해운업이 방위산업인지 유통산업인지는 국가가 내릴 판단이다. 내막은 알 수 없지만 현 정부는 후자에 힘을 싣고 시장논리에 해운사의 운명을 맡긴 것 같다.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단지 정부가 확고한 국가의 장기 운영계획에 따라, 해운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을 했고, 전략적 판단을 내린 끝에, 해운사의 목줄을 몇 개의 외국 선주들에게 쥐어준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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