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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S 시장의 몰락 요인 [thebell note]

이상균 기자공개 2016-08-03 08:22:45

이 기사는 2016년 08월 02일 07시4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3년 전 A증권사는 해외의 건물을 직접 사들인 뒤, 여기서 나온 임대수익을 ELS에 얹어주는 금융상품을 내놓았다. 덕분에 원금이 보장되면서 연 수익률은 은행 예금의 2~3배 수준에 달했다. 투자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모 ELS로는 이례적일 정도로 경쟁률이 5대 1을 넘었다. 금융감독원이 발행잔액 한도를 3000억 원으로 제한시킬 정도였다.

건물임대로 발생한 현금흐름을 ELS에 얹어준다는 발상은 신선했지만 리스크는 검증되지 않았다. 우선 해외에 건물이 위치해 있다 보니 국내에 비해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경기 불황으로 공실률이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물 임대료 수입이 예상에 못 미치면 ELS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손실을 볼 수도 있다.

A증권사는 리스크 관리 담당 직원을 현지에 보내 인수를 앞둔 건물의 실사와 부동산 시장 상황 등을 점검하도록 했다. 이 직원은 나름 최선을 다해 현지 부동산 시장의 리스크 요인을 살펴본 뒤 수십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A증권사의 CEO가 보고서를 작성한 직원과 함께 부서장, 임원 등을 호출해 질책한 것이다. 보고서 내용이 부실하다며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CEO가 언성을 높인 내용은 이랬다. "내가 직접 챙기는 사업인데 당신들이 이렇게 리스크가 높다며 발목을 잡으면 어쩌라는 거냐. 신규사업에 리스크 없는 게 어디 있느냐. 사업 한 두 번 해보냐.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주제넘게 CEO가 추진하는 사업에 훼방을 놓은 격이 된 리스크 관리 담당 직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CEO가 이렇게 노발대발하며 사업 추진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상황에서 리스크 요인을 따지는 간 큰 임원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지금 A증권사의 분위기는 180도로 변했다.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에 이어 EURO STOXX50 주가마저 급락하면서 ELS 발행액은 예전처럼 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동안 간과했던 ELS에 대한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사업이 축소될 것이란 전망이 다수다. 해외 건물의 임대수익을 얹어줬던 ELS의 리스크는 우려와 달리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면죄부를 받은 것도 아니다. 더 이상 이런 유형의 상품이 출시되기는 어렵다는 게 A증권사 내부의 전망이다.

최근 술자리를 함께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의미심장한 얘기를 꺼냈다. "ELS 발행액이 70조 원을 넘을 정도로 좋을 때는 일선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부서의 입김이 강했다. 당시에 리스크 부서에서 경고등을 울려도 CEO가 직접 나서 ‘왜 잘되고 있는 사업에 초를 치느냐'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지난해 HSCEI 하락으로 ELS 운용손실이 확대되고 난 후에는 기류가 180도 바뀌었다. 이제는 리스크 부서의 힘이 막강해졌다. 그동안 영업부서에서 리스크를 무시하고 멋대로 사업을 벌이다보니 회사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며 비판할 정도다."

ELS 시장의 봄날은 갔다. 가장 큰 요인은 HSCEI 하락이라는 외부 변수가 큰 몫을 차지하지만 내부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A증권사의 CEO처럼 자신의 실적 쌓기에 급급해 리스크 부서의 경고를 무시한 것도 결국 ELS 시장의 몰락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금 잘 나가는 금융상품일수록 내부의 리스크 요인을 꼼꼼히 살펴보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ELS처럼 급격한 시장의 위축을 겪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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