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자동펌프 한일전기, 신한지주 판 사연 64년 설립 자동펌프 전문업체…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려 수년째 적자
김일권 기자공개 2017-04-18 08:50:30
이 기사는 2017년 04월 18일 07: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일~, 한일 자동펌프."40대 후반 혹은 50대 중년층이라면 흑백 TV 시절 광고에서 봤던 한일 자동펌프 CM송을 기억할 것이다. 서수남 하청일 콤비의 목소리로 애니메이션과 함께 자동 펌프를 광고했다. 1964년 국내 최초로 자동펌프 제품을 개발해 한때 국내 굴지의 전기업체로 활약했던 한일전기 얘기다.
한일전기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았을 정도로 탄탄한 재무 구조를 자랑했다. 재일교포 자금으로 은행을 만들 때 주요 주주로 출자에 나서기도 했던 곳이다. 그러나 한일전기는 최근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며 34년 우정의 신한지주 주식까지 팔게 됐다. 외환위기를 전후에 국내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산 저가 제품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일전기는 '체인지 한일'을 외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 국내 자동펌프 시장의 선구자…막강한 자본금으로 신한은행 출자하기도
한일전기는 재일교포인 고(故) 김상호 전 회장에 의해 1964년 설립됐다. 김 전 회장은 한일전기를 만들기에 앞서 일본에서 전기세탁기 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산요전기에 부품을 납품하다 전기세탁기 완제품을 공급할 정도로 기술력을 쌓았다.
김 전 회장은 고국을 떠난지 38년 만인 1964년 귀국을 결정했다. 김 전 회장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전기세탁기를 판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열악한 생활 환경과 소득수준에서 전기세탁기 수요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자동펌프로 종목을 바꾸었다. 자동펌프를 개발하는 데에도 난항이 있었다. 전기세탁기 부품 협력사로 활동하던 인연으로 김 전 회장은 산요전기에 자동펌프 기술을 전이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산요전기는 몇 명의 펌프 기술자를 김 전 회장에게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자동펌프 제품 개발에 성공했지만, 출시 초반에는 제품이 팔리지 않아 고전하기도 했다. 1964년 회사를 설립하고 1965년 8월 첫 자동펌프 제품을 내놨지만, 출시 첫해 성적표는 28대의 판매에 그쳤다.
우수한 성능이 가장 좋은 홍보 전략이다. 수입산보다 성능은 좋고 가격은 싼 한일전기 제품의 장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자동펌프 판매 속도가 붙었다. 이듬해인 1966년에는 1500대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자동펌프의 대명사로 한일이란 이름이 자리매김했고 이후 가전, 주방제품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자동펌프의 모터기술을 활용한 탈수기 제품 '짤순이'는 우리나라에서 탈수기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한일전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전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일전기는 1982년 재일교포들이 힘을 합쳐 만든 신한은행에 출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한일전기는 지금도 600억 원 이상의 신한금융지주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한일전기는 대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줄줄이 도산했던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단 한명의 인력 구조조정 없이 넘어갔을 정도로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했다.
◇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려 수년간 적자…인력 감축 등으로 작년 흑자 전환
한일전기의 경영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중국산 제품들이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우리나라 시장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산 저가 제품들의 공습은 한일전기의 주력 제품인 자동펌프뿐만 아니라 가전 및 주방용품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일전기는 2000년 대 들어 펌프 외에 선풍기, 믹서기, 히터, 공기청정기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하지만 특별한 신기술보다 모터에 기반한 제품이어서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에 버티기 힘들었다.
한일전기는 가격 인하 정책을 맞대응을 하기도 했다. 한일전기는 중국 가전업체들로부터 일부 OEM 제품을 공급받아 판매했다. 2010년 경엔 제품 중 30~40% 가량을 중국산 OEM 제품으로 출시했다. 최근엔 OEM 비중을 10% 대로 줄였다.
하지만 한일전기의 경영실적은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돼 갔다. 2010년 이후로는 더욱 상황이 나빠졌고,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으로 영업이익 적자를 이어갔다. 5년간 누적 영업손실 규모는 5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일전기는 최근 30년 넘게 보유하고 있던 신한금융지주의 주식을 일부 정리하기도 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총 410억 원 규모의 신한지주 주식을 팔았다. 한일전기는 신한지주 전신인 신한은행을 창립할 때부터 투자한 초대 주주이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30년 우정을 포기했다.
한일전기는 지난해 다행히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수년간 경영 실적이 부진하면서 인력 감축 등 비용 절감 노력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2000년 초반 1000명을 훌쩍 넘어섰던 직원 수는 지난해 500명 안팎의 수준까지 줄었다.
한일전기는 또 중국산 저가 제품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제품군을 고가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 다품종 소량샌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10층이상 고층 빌딩용 자동 펌프나 선박용 펌프가 대표적이다. 아기바람 선풍기와 같이 특색있는 고품질 선풍기나 티타늄 보틀 믹서기, 이유식 용 소형 믹서기 등도 선보였다.
하지만 제품 포트폴리오가 대부분 마진이 낮은 저가 가전 제품 중심이어서 극적인 수익성 회복을 기대하긴 힘들다.
한편 한일전기는 현재 창업주의 아들인 김영우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1952년 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나왔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는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창업주인 김상호 전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별세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노랑통닭 운영' 노랑푸드 매각 착수, 삼정KPMG 맞손
- [달바글로벌은 지금]유가증권시장 향하는 뷰티기업, 에이피알 '판박이' 전략
- 삼성·키움까지…증권사 VC 협회 릴레이 가입 '왜'
- 코스포, 일본 진출 조력자로…현지 답사 첫 진행
- [VC 투자기업]씨너지, 132억 프리A 브릿지 투자 유치
- [아이지넷, Road to IPO]'보험+핀테크' 결합…인슈어테크 1호 상장 노린다
- [VC 투자기업]빅오션이엔엠, 뮤지컬 제작사 T2N미디어 인수
- 한화생명, 대규모 후순위채 발행…HUG 금리 여파 '촉각'
- HS효성첨단소재, 3년만에 '공모채' 노크…차입만기 늘린다
- [IB 풍향계]위기설 '해프닝' 롯데, 조달 전선 영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