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7월 05일 14: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보노보노, 살아있는 한 곤란하게 돼있어. 살아있는 한 무조건 곤란해.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어. 그리고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있어. 어때? 이제 좀 안심하고 곤란해 할 수 있겠지?"요즘 베스트셀러인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한 구절이다. 인생살이가 서툰 어른을 위해 30년 동안 인기를 누렸던 만화 속 주인공 보노보노 이야기를 동화처럼 엮은 책이다.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며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고 '틀린 길로 가도 괜찮아. 다른 걸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와 같이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관조하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마치 요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욜로족'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듯하다.
욜로(YOLO)는 'You Only Live Once'를 줄인 말로 인생은 한번뿐이라는 의미이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안을 홍보하는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YOLO, Man"이라고 외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미국의 유명한 뮤지션인 드레이크가 'The Motto'라는 노래에서 후렴으로 'You Only Live Once: that the motto nigga, YOLO'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진 말이다. 욜로는 미래나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지 말고 현재의 나를 위해 행복을 추구하라는 의미다.
이런 생각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흔히 욜로족이라고 하는데 일본의 사토리세대(한국에서는 달관세대라고도 불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욜로의 트렌드는 좀더 소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욜로족은 내 집 마련이나 노후준비와 같은 미래를 위한 노력보다는 지금 당장 자신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 여가생활에 아낌없이 소비를 한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생각에 빚을 내서라도 해외여행을 가고, 원하는 자동차를 산다.
물론 예전에도 욜로와 비슷한 말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흔히 '오늘을 즐겨라'로 번역이 되는 말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이 학생들에게 외쳐서 더욱 유명해진 말이다.
사실 '카르페 디엠'은 2000년 전 에피쿠로스학파였던 호라티우스의 송가(Odae 1-11)에 나오는 라틴어 시 구절이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현재를 잡아라, 미래는 최소한으로만 믿어라)에서 'carpe'는 '잡다, 즐기다, 이용하다' 라는 뜻이고 'diem'은 '오늘, 현재, 날(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지만 '오늘을 즐겨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오늘을 흥청망청 즐기면서 보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오늘을 충실하게 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실제 키팅선생은 학생들이게 "카르페 디엠! 소년들이여, 너의 삶을 비상(飛上)하게 만들어라"라고 외쳤다.
욜로는 충동구매적인 소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충동구매를 정당화하기 위해 욜로를 외치면 안된다. 트렌드를 연구하는 김난도 서울대학교 교수는 "욜로란 현재의 행복을 위해 도전하고 실천하는 삶의 방식이며 카르페 디엠의 라이프 버전"이라고 말한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자는 의미라는 것이다.
요즘 방송에서도 욜로를 주제로 한 예능프로그램들이 많이 상영되고 있다. 산으로, 섬으로, 시골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프로그램들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식당을 하고, 마라도에서 자장면을 먹기도 한다. 동경 어린 장면이지만, 왠지 조금 낯설기도 하다.
최근 젊은이들에게 회자되는 '탕진잼'이란 말이 있다. 재산을 탕진하는 재미라는 의미다. 있는 대로 다 써버리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 20~30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미래의 더 큰 행복보다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어섰다(53%). 그래서 그들은 '티끌 모아 집 못산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욜로가 기존과 다른 양상의 소비스타일로 번지고 있다. 700원짜리 삼각김밥을 먹지만, 자신의 커피취향을 위해 5000원짜리 외국 유명브랜드의 커피를 마신다.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외국유명가수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컵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 '인간사료'라고 불리는 대용량 벌크과자를 먹으며 돈을 아낀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효율적인 소비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욜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욜로에서 가장 특징적인 소비행태는 '가성비(價性比)'다. '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인 가성비는 가격에 비해 물건의 성능이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같은 가격이면 더 높은 퀄리티를, 같은 퀄리티면 더 낮은 가격을 선호하는 것이 욜로족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성비가 '가용비'(價用比)'로 바뀌고 있다. 가격 대비 용량이 큰 것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 인터넷 쇼핑몰 통계에 따르면 대용량 제품들의 판매량이 소모성이 강한 생필품들을 중심으로 크게 늘었는데 지난해에 비해 많게는 10배 이상 늘어난 품목도 있다고 한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도 1990년대엔 '코스파(Cost Performance의 일본식 발음)'가 있었다. 불황 속에서 절약을 목적으로 비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소비행태다. 싸고 좋은 물건을 찾으려는 노력이 트렌드를 이루면서 100엔 샵, 반값 햄버거, 유니클로 같은 저가브랜드가 크게 유행했다. 실제 일본의 할인매장에 대한 가구당 소비지출비중이 1994년 3.6%에서 2004년에는 9.8%로 크게 늘어 코스파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동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욜로는 코스파와 다르다. '나만을 위한 작은 사치', '지친 스스로를 위하는 격려', '자기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는 각자의 방식' 등으로 표현되는 욜로는 절약에 대한 자세가 아니라 소비에 대한 방향성이라는 점이다. 코스파와 욜로의 배경엔 깊은 불황의 그늘이 자리 잡고 있다. 코스파가 불황을 타개하는 방법이라면 변질된 욜로는 불황을 외면하는 방법이다. 욜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신들의 삶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르페디엠을 노래했던 호라티우스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적게 가지고 현재를 잡으라고 했지 탕진잼을 말하진 않았다. 카르페디엠을 외쳤던 키팅선생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삶을 비상하게 하기 위해 오늘이 중요하다고 했지 충동구매를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어느 개그맨의 농담처럼 '욜로 잘못하다간 골로 간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욜로가 2000년 역사를 가진 카르페 디엠의 최신판이라면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 어쩌면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You Only Live Once, 정말 인생은 한번 뿐이다.
이윤학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 이사
現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수상]02~06년 조선, 매경, 한경, 헤럴드 선정 베스트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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