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5월 10일 10: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식구(食口)의 사전적 의미다. 소위 말해서 '한솥밥'을 먹는 관계가 식구다.
아주 오랜 기간 식구는 '가족'과 동의어였다. 사실 엄밀하게 보면 식구와 가족은 다른 의미이다. 가족은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 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말한다. 과거 수 천년 동안 혼인관계 혹은 혈연관계의 가족이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했기 때문에 가족이 식구였고, 식구가 가족이었다.
사실 우리 조상들이 기근에서 벗어난 시기는 불과 30~40년 전이다. 1970년대까지 보릿고개가 있었고, 식량증산을 위해 통일벼 등 신품종 개발과 보리쌀 혼식, 밀가루 분식이 당연하던 시절이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인류 역사상 비만을 걱정하기 시작한 시기는 불과 몇 십 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수 만년 동안 인류는 식량부족으로 기아와 기근에 시달려 왔다.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으니 식구가 가족이고 가족이 식구 일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인가구가 일반화되고 다양한 동거형태와 식사방법의 변화 혹은 변질로 인해 이제 '식구'라는 원초적이고 다소 직설적인 말이 '가족'이라는 정감 어리고 관계지향적인 말에 밀려나고 있다.
상황이 어쨌든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는 식생활이다. 그리고 이 식생활을 가지고 사람들은 생활수준을 구분하는 척도로 사용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인 '엥겔지수'다. 엥겔(Ernst Engel)은 1800년대 후반에 활동한 독일의 통계학자다. 그는 작센왕국과 프로이센왕국의 통계국장을 지내면서 '저소득 가계일수록 총 가계지출 중 식료품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소위 '엥겔의 법칙'을 주장했다.
여기서 식료품의 지출비중을 흔히 '엥겔지수'라고 하는데 50%이상이면 후진국, 30~50%이면 개발도상국, 30%이하면 선진국이라고 분류한다. 즉 자신의 소비지출중에서 식생활에 사용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소득수준이 낮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엥겔지수가 낮을수록 선진국 혹은 생활수준의 고도화를 의미하는 중요한 척도로 삼아왔다.
얼마 전 우리나라 엥겔지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통계청 발표가 있었다. 가계지출 중 식료품 지출비중이 2004년 15.1%에서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엔(2016년) 13.7%로 통계작성 이후 최저치로 엥겔지수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럼 정말 우리나라는 확실히 선진국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까? 분명 식료품비의 비중이 2003년이후 추세적으로 줄어든 것은 분명 맞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먼저 식료품비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음식숙박비 비중이 2011년 12.5%에서 지난해 13.5%로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외식추세는 식료품비가 아니라 음식비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1인가구가 우리나라 대표가구가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1~2인가구의 경우 식료품에 대한 지출보다는 외식비중이 더 큰 경우가 많아서 음식숙박비 증가분의 상당부분이 사실상 식료품비의 대체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소비지출 중에서도 대표적인 '선택적 소비'인 오락문화비는 2003년이후 거의 변화 없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5.9% 수준). 교육비 역시 지난해 11.1%로 거의 같은 수준이다. 반면 '필수소비' 성격이 짙은 교통비와 주거·수도·광열비, 보건지출도 2003년에 비해 오히려 늘어났다.
결국 문화수준 등 생활의 질적인 수준을 결정하는 선택적 소비는 제자리에 머문 반면 필수소비는 오히려 2003년에 비해 늘어난 셈이다. 단순히 엥겔지수가 낮아졌다고 해서 선진국 수준이라거나 생활수준의 고도화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이웃나라인 일본의 엥겔지수는 최근 29년 동안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해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6년 일본의 2인이상 가구의 엥겔지수는 25.8%로 10년전인 2005년에(22.9%) 비해 추세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통계에 포함된 1인가구가 빠져 있어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확실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엥겔지수의 분모인 총소비지출이 줄어들고 있다. 2013년 월 소비지출액이 29만 엔에서 2016년에는 28만 2000엔으로 줄었다. 반면 식료품비는 같은 기간 6만 9000엔에서 7만 3000엔으로 늘어났다. 분모인 소비지출은 적어지고 분자인 식료품비가 커지니 당연히 엥겔지수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엥겔지수의 상승배경에는 일본의 바뀌고 있는 식생활 트렌드가 자리 잡고 있다. 소위 '음식의 레저화'로 일컬어지는 '즐겁게 먹는 식사'가 간편함, 새로움, 웰빙을 지향하면서 식료품비의 상승을 촉발했다. 실제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엥겔지수 상승요인의 절반이 식품가격의 상승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고, 나머지 40% 정도가 절약 등으로 인한 소비지출의 감소로 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엥겔지수를 볼 때는 60대이상 고령층과 저소득층을 잘 살펴봐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가구당 소비지출규모는 2003년 170만 원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난해에는 255만 원으로 13년만에 무려 50%나 증가했다. 일본의 소비지출규모가 추세적으로 줄어든 것과 완전히 반대상황이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2003년이후 처음으로 소비지출규모가 감소세를(-0.5%) 보였다. 문제는 60세이상 가구의 소비지출은 월평균 165만원으로 평균보다 9배나 더 큰 폭인 -4.4%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40대의 소비지출이 1.2%, 50대가 1.9% 증가한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60세 이상 가구의 경우, 교통비지출의 감소폭이(-21%) 가장 컸고, 교육, 의류·신발 등의 감소폭이 컸으며, 식료품지출도 2.1% 감소했다.
엥겔지수를 구성하는 분모인 소비지출이(-4.4%) 분자인 식료품비보다(-2.1%) 더 크게 줄어 엥겔지수가 높아졌으며, 식료품은 아니지만 외식과 관련이 높은 음식·숙박비의 지출과 주류·담배의 지출도 크게 늘어나 60대이상 고령층은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모두 엥겔지수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고령층의 엥겔지수를 실질적으로 낮추는 방법은 소득을 늘려 소비지출을 증대시키는 방법뿐이다. 즉 분자인 식료품비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분모인 소비지출을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소득이 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일을 하여 근로소득기간을 연장하거나, 착실히 연금을 준비하여 연금소득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총소득이 늘어나야 소비지출이 늘어나고 그래야 엥겔지수가 떨어지고 실질적인 생활수준의 고도화가 이루어진다.
엥겔이 살던 1800년대 후반에는 식구가 가족이었고 가족이 식구였다. 4인이상의 다인가구가 당연한 상식이었고, 분명 오늘날과 같은 1~2인 가구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일본처럼 '음식의 레저화'로 인해 엥겔지수가 높아지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한국처럼 외식비중이 높아지면서 엥겔지수가 낮아지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한국의 엥겔지수에도 불구하고 60대 이상 고령가구의 엥겔지수가 높아지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윤학 NH투자증권 소장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 이사
現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수상]02~06년 조선일보, 매경, 한경, 헤럴드경제 선정 베스트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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