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빅딜 그후]지배·사업구조 명료화…'소실대탐'의 정석⑧방산·화학 떼고 이재용 부회장 체제 가속화, 미래 중심 포트폴리오 재편
구태우 기자공개 2019-02-21 11:06:03
[편집자주]
'삼성 vs 한화·롯데 빅딜'이 이뤄졌던 2014~15년은 2010년대 재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해다. 재벌 그룹의 지배구조와 후계구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상태에서 각 그룹 간의 자발적 M&A는 큰 의미를 가졌다. 빅딜 이후 3년, 삼성·롯데·한화의 M&A 기업들의 현재, 그리고 M&A 이후 각 그룹의 사업 및 지배구조 현주소를 더벨이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2월 19일 15: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에서 매각된 방산·화학사는 한화그룹에서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한화그룹의 방산·화학부문은 삼성 계열사를 인수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2015년 삼성과 한화의 '빅딜' 후 4년이 지난 현재 한화의 방산·화학 부문은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올라섰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것처럼 삼성은 한화에 매각한 걸 후회할까. 매각 4년차를 접어든 현재 삼성 내부의 분위기는 호평 일색이다. 자금 마련이 아닌 지배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했기 때문이다.삼성이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빛이 바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방산과 화학 부문 매각으로 삼성은 계열사를 단순화해 사업 집중도를 높였다. 1조9000억원의 매각 대금으로 주력 사업에 투자할 종잣돈을 마련한 것도 장점이다. 삼성 전체 매출(비금융 기준)의 5% 미만을 차지하는 방산과 화학을 팔고 적잖은 이득을 봤다는 평이다.
◇'답정너'였던 매각, 삼성식 선택과 집중 먹혔다
삼성의 계열사 매각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와병으로 쓰러지면서 후계구도를 굳히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삼성이 선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당시 삼성의 지배구조는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을 중심으로 다수의 순환출자 고리가 얽혀 있다. 이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때문에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지배구조의 안정화가 필요했다. 비주력인 중후장대를 매각해 순환출자를 일부 해소하고, 전자부문 계열사의 지배력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삼성테크윈은 삼성전자(25.5%), 삼성물산(4.3%), 삼성증권(2.0%), 삼성생명(0.5%)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삼성종합화학의 최대 주주는 삼성물산(19.3%)이었다. 삼성SDI(13.1%), 삼성전기(9.0%), 삼성전자(5.35) 등 순으로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일례로 빅딜 후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매년 확대됐다. 2016년 초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4.06%다. 지난해 3분기까지 0.59% 포인트 증가했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이 17.08%의 지분을 보유해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방산·화학사 매각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일부 해소됐다. 매각 후 순환출자 고리가 해소되면서 사업구조가 슬림화됐다. 빅딜 후 삼성의 제조 부문 포트폴리오는 △전자 △바이오 △중공업(조선) △엔지니어링 등으로 축소됐다. 삼성의 계열사는 62개로 2014년보다 8개 줄었다. 지배구조도 단순화했다. 현재 삼성생명이 금융 계열사를, 삼성전자가 전자·IT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이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재계 한 관계자는 "빅딜 자체가 삼성 지배구조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지만,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을 높인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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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건 적고 얻을 게 많았던 '빅딜'
재계에서 삼성은 계열사를 샀으면 샀지, 팔지는 않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방산과 화학부문을 통째로 떼어낸 데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매각으로 인한 득실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방산·화학부문에서 손을 떼면서 세 가지를 얻었다. 미래 사업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재편했고, 매각 대금은 신사업 재원으로 쓰였다. 경영권 승계 작업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방산부문을 매각해 부정적 이미지를 씻었다.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등 4개사 매각으로 자산총액과 매출액이 4%, 영업이익이 2% 가량 줄었다. 빅딜 후 자산은 11조9062억원, 매출은 13조9585억원 감소했다. 총차입금은 3조475억원 감소해 10% 가량 줄어들었다. 2013년 기준으로 빅딜 후 재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다. 자산과 매출은 줄었지만, 지배구조 개편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던 점도 장점이다.
삼성은 방산·화학부문 매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스마트해졌다. 삼성은 지난해 25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바이오, 전장부품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정했다. 빅딜 전부터 방산과 화학부문은 삼성의 미래 전략에서 벗어나 있었다. 국방부와 외국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방산부문은 확장성도 크지 않은 데다, 삼성이 1등하는 분야도 아니다. 때문에 삼성은 방산과 화학부문 대신 전자와 바이오부문을 집중 육성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은 빅딜 후 AI와 전장부품 육성에 나섰다. 9조원을 들여 미국의 차량용 전장 부품사 하만(harman)을 2016년 인수했다. 이듬해 삼성전자 DS부문 산하에 전장사업팀을 신설했다. 이 팀은 자율주행 관련 기술과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사업을 맡고 있다. 삼성은 2014년부터 M&A를 통해 신성장동력과 관련 있는 기업 수곳을 다량으로 인수했다. 사물인터넷 플래폼 개발업체인 스마트싱스를 시작으로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1조9000억원의 매각대금을 3차례에 걸쳐 지급했다. 매각대금은 삼성의 신사업을 위한 종잣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화와의 빅딜은 이 부회장 체제의 삼성을 보여준 신호탄이 됐다. '뉴삼성'은 이른바 돈이 되는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하기보다 전자·바이오·금융 등 주력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 체제의 삼성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창업 후 지배구조의 큰 변화가 없었는데, (빅딜 이후) 지배구조는 물론 신사업까지 가속도가 붙었다"며 "무기 사업에서 철수해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지를 개선했고, 비주력사업을 정리해 글로벌 핵심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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