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빅딜 그후]'승계' 수월해진 한화…김승연 회장 '신의 한수'④화학업계·3세승계·對삼성관계 '3계' 잡아
박기수 기자공개 2019-02-18 08:07:31
[편집자주]
'삼성 vs 한화·롯데 빅딜'이 이뤄졌던 2014~15년은 2010년대 재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해다. 재벌 그룹의 지배구조와 후계구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상태에서 각 그룹 간의 자발적 M&A는 큰 의미를 가졌다. 빅딜 이후 3년, 삼성·롯데·한화의 M&A 기업들의 현재, 그리고 M&A 이후 각 그룹의 사업 및 지배구조 현주소를 더벨이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2월 11일 14: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밸류에이션과 실적 상승을 제외하고 한화가 화학사를 인수해 누린 효과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업계에서는 삼성의 화학사를 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한 수를 '신의 한 수'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한화 빅딜 1년 후 진행된 롯데-삼성 간 빅딜 현장의 중심에 있었던 롯데그룹 고위 임원 B씨 역시 "빅딜의 최대 수혜자는 한화그룹"이라고 치켜세웠다. 한화가 얻은 효과는 크게 '3계'로 압축된다. 업계(業界)와 승계(承繼), 삼성과의 관계(關係)다.◇삼성토탈 인수로 에틸렌 생산만 '300만 톤'
우선 화학업계를 잡았다. 삼성토탈을 인수하며 '석유화학의 쌀'이라고 불리는 에틸렌의 생산 능력을 50% 이상 늘리면서다. 플라스틱과 고무 등 최종 생산품을 생산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제품이 바로 에틸렌이다. 에틸렌 생산량은 석유화학업계에서 업체 간 순위를 나누는 기준으로 사용할 정도로 상징성 있는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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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에서 에틸렌 생산 능력은 1999년 대림산업과 50대 50으로 합작해 세운 여천NCC만 가지고 있었다. 한화케미칼 본사에서는 에틸렌을 가공해 만드는 폴리올레핀(PO), 폴리비닐 클로라이드(PVC), 가성소다류 클로르알칼리(CA) 등의 가공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여천NCC의 연 에틸렌 생산 능력은 약 195만 톤으로 당시 1·2위였던 LG화학(220만 톤), 롯데케미칼(210만 톤)에 이어 3위에 그치고 있었다. 여기에 합작사라는 한계도 있어 여천NCC의 생산 능력을 한화의 생산 능력으로 여기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다만 한화가 삼성토탈을 인수하면서 국내 에틸렌 생산 시장에 변동이 일어났다. 당시 삼성토탈의 연간 에틸렌 생산 능력은 약 109만 톤으로 여천NCC와 합하면 300만 톤을 능가하는 수치다. 삼성토탈 역시 삼성과 프랑스 토탈간의 50대 50 합작사이긴 하지만 빅딜 후 한화의 에틸렌 생산 능력이 괄목할 정도로 상승한 점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여기에 한화종합화학이 영위하고 있는 TA(테레프탈산)과 PTA(고순도 테레프탈산) 사업도 사업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지난해는 PTA 산업이 호황을 맞기도 했다.
◇이익잉여금·지분법 이익으로 미소짓는 세 아들
한화의 삼성 화학사 인수는 3세 승계(承繼) 작업에 윤활유가 됐다. 기업 인수와 대기업 오너 일가의 승계 작업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한화케미칼은 한화그룹의 대표 화학사로서 빅딜로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취득한 회사다. 다만 한화케미칼만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매입한 것은 아니다. 한화그룹의 또 다른 지배구조 줄기에 있는 한화에너지도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매입했다. 심지어 인수 후 현재 한화종합화학의 최대주주는 한화케미칼이 아닌 한화에너지다.
한화그룹은 크게 두 가지 지배구조 맥이 있다. 김승연 회장이 최대주주이자 사실상의 지주사 ㈜한화를 필두로 한 맥과, 김 회장의 세 아들(김동관·김동원·김동선)이 각각 50%, 25%, 25%씩 지분을 보유 중인 H솔루션이 최상단에 있는 맥이다. 한화케미칼의 최대주주는 ㈜한화(36.67%)고, 한화에너지의 최대주주는 H솔루션(100%)이다.
김 회장의 아들들, 특히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는 훗날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한화의 지분을 차지해야 한다. 지분 인수를 위한 자금 마련으로 떠오르는 열쇠가 바로 'H솔루션'이다. 결국 'H솔루션→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한화토탈'로 이뤄진 지배구조에서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탈의 존재가 승계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감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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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배당이다. H솔루션 계열의 회사들은 배당금의 원천이 되는 이익잉여금이 빅딜 이후 모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화토탈의 경우 2014년 말 이익잉여금이 1조5906억원이었지만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2조9179억원으로 약 두 배가량 뛰어올랐다.
세 아들의 회사인 H솔루션에 직접 배당할 수 있는 통로인 한화에너지도 지난해 3분기 말 이익잉여금 1조1448억원을 기록하며 1조원대를 돌파했다. H솔루션은 2017년 말 이미 1조원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말은 2017년 말 대비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H솔루션은 한화-삼성 간 빅딜이 최종 완료된 2015년 이후 배당을 폭발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2014년 6월과 2015년 7월에 중간배당으로 각각 75억원을 배당한 H솔루션은 2016년 6월과 2017년 5월에 각각 500억원을 배당했다.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김동관 전무가 250억원을,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선 씨가 각각 125억원을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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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최하단 기업인 한화토탈의 실적 개선으로 한화종합화학과 한화에너지의 지분법 이익 규모도 커지고 있다. 지분법 이익은 영업외손익으로 당기순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쓰이는 잣대 중 하나인 주가수익률(PER, 1주당 순이익)에도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한화종합화학은 2014년 말만 해도 지분법 이익이 481억원에 그쳤다. 다만 빅딜 이후 2015년 말에는 2575억원, 2017년 말에는 5450억원을 거뒀다. 한화에너지도 2014년 지분법 이익에서 적자를 봤지만 2017년 215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으로는 1668억원을 기록했다.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H솔루션도 지분법이익이 빅딜 이후 해마다 증가 추세다. 2017년 말 에이치솔루션의 지분법 이익은 2150억원 수준이다. 빅딜 전 54억원의 손실을 본 것과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H솔루션의 지분 가치가 상승할 경우 세 아들의 ㈜한화 지분 매입이 용이해진다. 승계 작업에 윤활유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한화케미칼의 단독 매입이 아닌 한화에너지와의 공동 매입이 훗날 있을 승계 작업에 용이한 환경을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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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종합 가치 상승에 한화도 삼성도 '미소'
거래의 바탕은 신뢰다. 거래 이후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면 당사자 간 신뢰가 두터워지고 거래 자체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화학·방산사 인수 이후 현금창출력을 강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한화, 매각 대금으로 주력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삼성 모두 빅딜을 통해 윈-윈 효과를 봤다.
여기에 실제 거래 당시 붙었던 옵션이 눈길을 끈다. 당시 한화는 화학사를 인수하고 싶었으나 자금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2015년 3월 말 연결 기준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을 모두 합해도 1조원이 안됐다. 한화종합화학의 최종 매각 대금은 1조 309억원이었다. '일시불'이 불가능했던 한화에 삼성은 3년 분할 지급 조건을 허용해줬다. 첫해 40%, 이듬해와 그다음 해 각각 30%씩을 지급하는 식이다.
대신 한화는 인수하는 기업 중 주요 현금창출원인 한화토탈이 2017년과 2018년 영업이익률 5% 이상을 거둘 경우 영업이익 중 일부를 삼성물산에 지급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화토탈의 2017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은 15.7%, 2018년 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은 11.8%이다. 계약상 한화토탈이 벌어들인 영업이익 중 일부를 삼성물산에 지급하면서 삼성은 추가적인 수익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외 삼성과 한화는 삼성이 보유 중인 한화종합화학의 지분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조건도 걸었다. 한화종합화학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삼성 계열사는 삼성물산(22.99%)이다.
주식매매계약서에 의하면 삼성물산과 한화종합화학은 거래종결일(2015년 4월 30일)로부터 6년(한화가 요청하면 7년) 내에 한화종합화학을 시장에 상장하기로 했다. 다만 상장되지 않을 경우 삼성물산이 보유한 잔여지분에 대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반대로 한화종합화학 역시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삼성물산이 보유 중인 한화종합화학의 지분을 팔 경우 한화종합화학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화종합화학의 기업 가치가 상승할수록 지분을 보유 중인 삼성물산은 미소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한화로 매각 이후 한화토탈을 품고 있는 한화종합화학의 기업 가치가 상승했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보유 중인 한화종합화학의 지분 가치가 2015년 말 2749억원이었다가 지난해 말 5000억원대 후반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추후 한화종합화학이 IPO에 나설 경우 보유 중인 지분 가치가 빅딜 전보다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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