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빅딜 그후]이재용은 매각을 후회할까⑦세대 거치며 거리 멀어진 화학·방산사, 지금 팔았다면 더 비싸게 팔수도
박기수 기자공개 2019-02-20 11:45:55
[편집자주]
'삼성 vs 한화·롯데 빅딜'이 이뤄졌던 2014~15년은 2010년대 재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해다. 재벌 그룹의 지배구조와 후계구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상태에서 각 그룹 간의 자발적 M&A는 큰 의미를 가졌다. 빅딜 이후 3년, 삼성·롯데·한화의 M&A 기업들의 현재, 그리고 M&A 이후 각 그룹의 사업 및 지배구조 현주소를 더벨이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2월 18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탄탄한 포트폴리오와 최근 몇 년간의 호실적. 삼성이 내다 판 화학·방산사들은 삼성을 떠나고 황금기를 맞았다. 한화로 주소를 옮긴 삼성토탈은 영업이익으로만 1조원을, 롯데정밀화학은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맞았다. 한화의 방산사들도 조 단위 매출을 내며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 매각 이후 3~4년여가 흐른 지금, 삼성은 매각을 후회할까? 삼성은 화학사를 꼭 팔아야만 했을까?◇매각은 시대의 흐름이었다
롯데 빅딜 이후 삼성에서 롯데로 직장을 옮긴 관계자 D씨는 롯데정밀화학이 국내 화학업계의 선두 주자인 LG화학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터무니없는 가정만은 아닌 것이 롯데정밀화학의 시초인 한국비료는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이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회사였다. 관계자 D씨는 "이병철 회장의 뜻대로 대를 거쳐 계속 성장해왔다면 국내 화학 산업을 주름잡는 회사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태와 1960년대 후반에 벌어진 삼성그룹 후계 문제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었던 삼성정밀화학은 결국 국영화됐다. D씨는 이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삼성과 화학의 거리가 확 멀어지게 된 계기라고 설명한다. 그러다 1994년, 경영권을 쥔 이건희 회장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다시 회사를 되찾았다. 관계자 D씨는 "이건희 회장이 다시 회사를 되찾긴 했지만 화학 산업을 키운다는 목적보다는 선대 회장의 뜻을 기린다는 의미가 컸다"고 회고했다.
실제 그룹으로 복귀한 삼성정밀화학은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와 비교했을 때 성장세가 미미했다. 2016년 말(2016년 중 롯데로 매각) 롯데정밀화학의 연결 기준 자산총계는 1조5309억원으로 20년 전인 1996년 말(5896억원)보다 2.56배밖에 성장하지 못했다. 반면 1996년 말 자산총계 21조8961억원을 기록 중이던 삼성전자는 20년 후 자산총계가 262조1743억원으로 약 12배나 성장했다. D씨는 "이건희 회장도 화학사 성장에 큰 욕심이 없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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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 세대를 지나며 화학 산업에 대한 중요성이 희석된 삼성그룹 내에서 2014년 또 한 번의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이재용 부회장의 등장이다. 관계자 D씨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화학 기업은 단지 할아버지가 애정을 가졌고, 아버지가 다시 사온 기업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라며 "이건희 회장이야 이병철 선대회장의 화학사 애착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겠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그러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미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던 삼성과 화학사의 거리가 대를 거치며 더 멀어진 셈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에는 삼성정밀화학의 자산총계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중후장대 산업이 이미 삼성의 비핵심자산이었던 상황에서 매각은 자연스럽고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D씨는 "경영 일선에 나선 새로운 오너가 자기 색깔을 입히기 위해 선택한 카드가 바로 화학사 매각"이라고 전했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선대 회장의 뜻을 받아 화학 산업을 꾸준히 영위했다면, D씨의 말대로 LG화학 같은 종합화학 기업으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다만 이병철 회장의 '화학 애정'이 이건희·이재용 부자에게까지 이어졌어야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결국 이는 개연성이 낮은 가정에 불과했다.
◇"돈 더 받을 수 있었다" vs "그때 파는 게 나았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어차피 팔 것이었다면, 경영자로서 이재용 부회장은 반드시 그때 화학사를 팔아야만 했을까? '자기 색깔 입히기'를 굳이 그때 해야만 했느냐는 의문이다. 관계자 D씨를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은 호실적으로 기업 가치가 뛴 현재 시점에 화학사를 팔았다면 더 많은 돈을 받고 팔 수 있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제 매각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은 매각 당시와 현재 현저히 바뀐 모습이다. 한화로 팔았던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탈의 순자산 규모는 2014년 말 연결 기준 1조8080억원, 2조5550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말 기준 두 기업의 순자산은 각각 3조4276억원, 3조8790억원으로 상승했다. 삼성정밀화학 역시 2015년 말 순자산이 9185억원이었지만 지난해 9월 말 1조5909억원까지 늘어났다. 순자산 가치는 기업 가치를 매기는 잣대가 돼 매각 대금을 결정하는 변수다. 업계에서는 현재 시점에 팔았다면 적어도 배 이상의 매각 대금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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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씨는 "화학 산업은 일정한 사이클을 타는 산업"이라면서 "업계의 전문가라면 향후 몇 년간의 대략적인 시황은 예측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화학사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구조 조정을 꾀하던 이재용 부회장에게 그다지 의미 있는 사실이 아니었다는 셈이다.
다만 화학 산업의 시황을 쉽게 예측하기 힘들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빅딜 이후 삼성에서 한화로 직장을 옮긴 관계자 A씨는 "삼성토탈이 한화로 팔릴 때 당시 시황이 무릎(악조건)인지 가슴인지 알 수 없었다"며 "만약 지금 시점에 팔았다면 매각 대금이 훨씬 비싸졌을 텐데, 한화나 롯데가 이를 감수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한화는 삼성의 방산사와 화학사를 모두 합쳐 약 2조원에, 롯데는 삼성의 잔여 화학사를 인수하는데 약 3조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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