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CEO 속속 배출…김남구식 인재경영 '용인불의' [한국투자금융을 움직이는 사람들]②유상호·백여현 등 10년 넘게 신임…성장 원동력, 무한신뢰·기회부여
양정우 기자공개 2019-06-12 14:39:56
[편집자주]
한국투자금융그룹의 슬로건은 'VISION 2020 아시아의 선도금융기관'이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굴지의 금융그룹으로 자리잡았고 이제 글로벌 투자은행과 어깨를 견줄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 71억원에 인수한 중소 증권사를 자산 71조원의 거대 금융그룹으로 일군 입지전적 인물들이 있다. 한국투자금융그룹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력의 면면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6월 05일 07: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은 대표 시절 역대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했다. 지난해 말 부회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무려 12년 간 CEO를 맡았다. 증권업계 수장의 평균 임기는 길어야 3년 남짓. 당분간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금융업계 전반으로 비교 범위를 넓혀도 전문경영인이 장기간 대표를 맡은 건 드문 일이다. 현재 10년 넘게 CEO를 맡은 백여현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가 유일하게 유 부회장의 기록에 근접해 있다. 대표적인 장수 CEO가 모두 한국투자금융그룹 소속인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최장수 CEO라는 업적은 가장 먼저 본인의 공로로 평가받는 게 마땅하다. 다만 여기에 더해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사진)의 사람 쓰는 법에 주목하는 이가 많다.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쓰고 나면 의심하지 마라)'. 한번 신뢰한 자에게 모든 열정과 역량, 비전을 쏟아부을 기회를 주는 게 김 부회장의 일관된 경영 철학이다. 한번 임명한 CEO와 임직원이 마음껏 일을 벌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것. 이것을 한국투자금융그룹의 원동력으로 꼽는 시각이 적지 않다.
◇유상호·백여현, 장수 CEO 대표 주자…용인술 키워드 '용인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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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 부회장의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김 부회장이 메리츠증권 상무였던 유상호 부회장을 직접 스카우트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과거 삼고초려 끝에 부사장 자리를 맡긴 인재를 끝까지 지지해줬다.
유상호 부회장은 격변의 시기를 거쳐 한국투자증권을 수익 1위 증권사로 변모시켰다. 오랜 신뢰에 화답한 것이다. 지난해 당기순이익(4993억원)은 국내 초대형 IB 가운데 가장 많았다. 3년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증권사의 수익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 11.2%)이 초대형 IB 중 유일하게 10%를 넘어섰다. 취임 첫 해 63조3000억원이었던 고객자산은 재임 마지막 해 150조6000억원으로 불어났다. 무려 87조3000억원이나 늘어난 규모다.
백여현 대표와의 만남도 극적이다. 백 대표와 김 부회장은 옛 동원증권 채권부에서 대리 직함으로 같이 일한 사이다. 백여현 대표도 11년 간 한국투자파트너스를 이끌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전체 운용자산(AUM)은 2000억원 수준에서 2조9000억원까지 늘었다. 전체 인력은 20명이었던 벤처투자사가 이제 전문 인력만 95명에 달하고 있다. 백여현 대표 체제는 아직 이어지고 있다.
◇임직원 운용철학, 운용사 설립 계기…한국밸류운용, 가치투자 대표사 성장
'용인불의'라는 키워드로 집약되는 김남구 부회장의 용인술은 단지 CEO의 임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상호 부회장과 백여현 대표에게 경영자로서 뜻을 이룰 시간을 줬다면 한 인물의 비전을 믿고 운용 철학을 펼칠 기반을 닦아준 사례도 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하 한국밸류운용)의 설립은 이채원 대표의 가치투자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됐다. 시황의 부침과 무관하게 기업엔 본질적 내재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다. 지난 2006년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전문 운용사로 설립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내부에서도 무리한 결정이라는 시각이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를 향한 김남구 부회장의 믿음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운용철학을 마음껏 펼쳐보라"며 신뢰를 보냈다. 오너의 허락이 떨어지자 신규 운용사는 수개월만에 설립 절차를 마쳤다. 설립 초기 성장통을 겪을 때도 김 부회장은 묵묵히 기다리며 격려했다. 이제 한국밸류운용은 국내 대표 가치투자 운용사로 제자리를 잡았다.
김남구 부회장은 일단 CEO에게 일을 맡기면 최대한 간섭을 자제하는 편이라고 한다.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동원증권이 금융지주회사를 출범하고 동원그룹에서 분리됐을 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의 책임 경영에 대해 숙고해 왔다.
◇한국투자금융그룹, 사람 중시 경영…김재철 명예회장, 옛 동원증권 내력
김남구 부회장의 사람 쓰는 법에서 읽히듯 한국투자금융그룹은 유독 사람을 중시한다. 지난해 상위 5개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건 당시 CEO였던 유상호 부회장이었다. 대표보다 연봉이 많은 증권사 직원의 신화도 원조는 한국투자증권이다.
이런 경영관은 옛 동원증권에서도 엿보인다. 동원그룹의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은 증권업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사람 육성에 대한 관점이 뒤바뀌었다고 한다. 증권사(당시 한신증권)을 인수한 뒤 한 사람이 천명, 만명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산업과 증권업은 사업 모델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은 인센티브 제도, 스톡옵션 제도 도입으로 이어지며 한국 금융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2004년 동원증권이 동원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는 과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김재철 명예회장은 지분 정리 등 승계 작업을 완전히 끝냈을 뿐 아니라 경영상의 모든 의사결정 권한을 김남구 부회장에게 넘겼다. 국내 여느 재벌가와 비교하면 다소 빠른 수순이다. 이 용단은 1년 뒤 김 부회장의 주도로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단초가 됐다.
김남구 부회장은 책임 경영의 효율성과 무게감을 몸소 체험했다. 이 경험이 한번 신뢰한 임직원을 끝까지 믿고 CEO의 독립 경영을 지지하는 경영 철학의 기반일 수 있다. 기업은 사장의 그릇보다 더 크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다. 무엇보다 임직원이 자유롭게 활약하는 데 무게를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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