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된 은행원, 조용병 회장의 디지털 특명 신한-고려대 디지털금융공학 석사 과정 첫 졸업자 배출…입학 경쟁률 29:1
이은솔 기자공개 2019-09-27 11:20:10
이 기사는 2019년 09월 24일 16: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방학이 눈깜짝할 새 지나갔어요. 시험기간에는 밤을 새기도 하는데 직장생활과 병행하는게 만만치 않아요."신한금융그룹에는 '공대생'이 된 직원들이 있다. 금요일이 되면 퇴근하자마자 학교로 달려가고, 지갑에는 18학번 학생증을 들고 다닌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에는 밤을 새며 시험 준비도 하고 논문도 쓴다.
이들은 신한금융이 개설한 디지털 금융공학 과정을 수강하는 '석사과정생'이다. 신한지주·은행·카드·금융투자·생명·DS·아이타스·AI 등 그룹 내 8개 자회사에서 선발된 직원들은 이 과정을 통해 머신러닝, 빅데이터 등 디지털 전문성을 갖춘 '석사급 인재'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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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 아닌 '공학' 석사…따라가기 어려워 선행학습도
신한금융그룹은 2017년 4월 고려대학교와 협약을 맺고 컴퓨터정보통신대학원 산하에 디지털금융공학(Digital Finance Engineering) 과정을 개설했다. 2년 석사 과정으로 2017년 9월부터 1기 과정을 시작해 최근 첫 졸업자를 배출했다. 현재 2기 32명, 3기 34명이 수강 중이다.
이들은 2년 동안 블록체인, 빅데이터, 인공지능 이론, 자연어처리 등을 공부한다. 일반적으로 금융회사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 석사를 지원하는 것과 달리 공학 석사인게 눈길을 끈다. 중간·기말고사를 비롯해 3학기에는 종합시험, 4학기에는 논문과 졸업 프로젝트도 수행해야 한다. 일반 석사 과정에 똑같다.
문과생 출신 은행원을 위해 '선행학습'도 제공한다. 신한금융 차원에서 '프리스쿨'이라는 이름으로 공학 수학, 미적분 등을 따로 교육한다. 기하·벡터 등 수학 개념이 없으면 데이터 마이닝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디지털금융 석사 과정을 수강 중인 신한금융 관계자는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시험 기간에는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공부량이 많다"고 했다.
◇"이자 얼마쯤 해요?" 챗봇 답변 위해서는 컴퓨터 공학 필수
금융 상품을 설계하고 판매하는데 왜 경영학이 아닌 공학을 공부해야 할까. 가령 신한은행 애플리케이션 안에 고객들이 상담을 할 수 있는 '챗봇' 서비스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화 과정에서 용어를 정확하게 구사하지 않는다. "여신 금리 얼마인가요?" 대신 "요새 이자 얼마쯤 해요?"라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상 언어를 업무 용어로 분류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연어처리'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자연어처리는 컴퓨터를 이용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기술을 뜻한다. 금융회사 직원들이 이런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건 아니지만,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협력사에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요청할 수 있다.
신한은행, 카드, 지주 등의 문과 출신 직원들에게도 공학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건 이 때문이다. 고객들이 창구를 내방하기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선호하는 시대에 금융은 디지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간단해 보이는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도 복잡한 공학 기술이 적용되고, 그 원리를 알아야 서비스를 제대로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게 석사 과정을 수강중인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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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병 회장 직접 지시한 디지털 인재 육성책…힘든 과정에도 경쟁률 치열
디지털금융공학 석사 과정을 개설한 장본인은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다. 모든 금융회사들이 디지털 전환(DT,Digital Transformation)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조 회장은 보다 장기적인 전략의 필요성을 느꼈다. 당장 애플리케이션 하나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는 멀리 보고 직원들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거치고 학교에도 수학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까다로운 선발 과정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1기의 경우 은행에서 11명을 선발하는 데 319명이 지원했다. 한 학기 1265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중 회사가 1100만원을 부담해준다는 것도 큰 메리트다. 수강생 중 한명은 "회사의 지원을 받아 전문 기술을 갖추고 학위도 얻을 수 있는, 일석 이조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강 효과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과정을 수료한 한 직원은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전에는 디지털 관련 부서와 대화할 때 잘 모르다보니 대화가 막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제는 프로세스를 이해하게 되니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석사 과정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현업에 적용 가능한 아이디어들도 등장하고 있다. 1기생들이 진행한 졸업 프로젝트 결과물인 블록체인 기반 상품권 서비스, 주식 추천 시스템 고도화 등은 바로 출시해도 될 만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하다는 호평을 듣기도 했다.
과정을 수강 중인 신한금융 관계자는 "공학 교육을 받으면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아니라 진짜 실현 가능한 걸 그려볼 수 있게 됐다"며 "어렵지만 그만큼 배우는 게 많다보니 한 명도 낙오 없이 다들 열심히 듣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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