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를 움직이는 사람들]'집단 지성'의 힘 보여주는 '수펙스추구협의회'①7개 위원회·16개 계열사 의사결정협의체…계열사 독립경영 지원에 방점
최은진 기자공개 2019-10-23 09:40:48
[편집자주]
재계 서열 3위에 이름을 올리는 SK그룹은 빠르게 몸집을 키우며 선두권 경쟁 대그룹을 압도하는 성장을 이루고 있다. 섬유사업에서 시작해 석유화학·텔레콤·반도체 등 전혀 다른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한 결과다. 상위권 대그룹 가운데 가장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 등 독특한 의사결정기구를 마련하며 효율적이고도 투명한 경영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더벨은 SK그룹을 움직이고 있는 조직과 인물들을 조명해 봤다.
이 기사는 2019년 10월 18일 07: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그룹의 중심에는 수펙스(Super Excellent Level)추구협의회가 있다. 가족회의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집단소유 및 공동의사결정 체제를 신뢰하는 오너일가의 가풍이 그룹에도 이식됐다. 오너 몇 사람의 역량보다는 전문경영인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가 모여 이룬 집단지성의 힘을 신뢰하며 만든 조직이다. 오너일가를 배제하고 그룹 내 핵심경영진들이 머리를 맞대 최적의 대안을 도출해 낸다는 차원에서 경쟁 대그룹과 차별화를 이루는 경영기구로 평가된다.수펙스추구협의회는 약 30년 된 조직이지만 오랜시간 명맥이 이어지면서 꽤 많은 변화를 거쳤다. 단순 사장단 회의에서 토론과 독서를 함께 하는 모임으로 변화했다가 최근에는 선임 경영진들이 계열사 자율경영을 지원하고 자문해주는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그룹의 중대 현안은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각 계열사의 전략을 이사회가 결정하는 방식이다. 영역별로 7개의 위원회가 있고 16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구성원으로 활동한다.
◇사장단 회의서 출발, 2013년 핵심기구 급부상
'수펙스'라는 개념이 SK그룹에 도입된 건 고 최종현 명예회장이 총수이던 지난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룹 차원에서 '수펙스'라는 경영혁신 운동이 시작됐다. 각 상품 및 서비스별로 최상의 수준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상품별 수펙스'가 실시됐다. 수펙스라는 말은 인간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뜻을 갖는다. 세계 일류를 뛰어넘는 극한 수준을 목표로 설정하면 그 이상을 해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바탕이 됐다.
이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최종현 회장을 의장으로 한 일종의 사장단 회의 성격이 컸다. 정기적으로 식사하는 모임 자리이자 정보교류 정도의 역할에 그쳤다. 그러다 이 조직은 총수 자리를 이어받은 최태원 회장이 취임하면서 토론과 공부를 좋아했던 최종현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주요 의사결정 기구로 재편됐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SK텔레콤·글로벌·케미칼 등 핵심 계열사 CEO들이 매달 모여 함께 식사하고 세시간 가량 토론을 하면서 경영전략을 구상하는 자리가 됐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 힘이 실리게 된 건 지난 2003년, 최종현 회장 시절부터 그룹 수뇌부 역할을 하던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면서다. 구조조정본부를 통한 '황제식 경영, 오너 친위대' 등의 오명을 씻고 오너 한명에 쏠리던 권한을 전문경영인 및 이사회로 분산해 투명한 의사결정 체제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로 구조본을 전격 해체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의 구속이 결정된 상황에서 그룹 이미지를 쇄신하고 총수 부재의 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한 집단경영체제 구축이 시급했다. 이 때 구조본이 맡던 브랜드 및 기업문화 관리 등 상당부분의 역할이 수펙스추구협의회로 이관됐다.
하지만 SK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개편되면서 수펙스추구협의회보다는 지주사인 SK㈜에 무게가 더 실렸다. SK㈜ 대표이사이던 최태원 회장과 SK텔레콤 등 핵심 계열사가 중심이 된 'SK경영협의회' 등 컨트롤 타워 조직이 수펙스추구협의회와 별도로 마련되기도 했다.
이후 SK하이닉스를 인수한 바로 직후인 지난 2013년 수펙스추구협의회가 공식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 당시 SK그룹은 몸집을 키우고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겠다는 목표로 '따로 또 같이'라는 슬로건 아래 경영체제의 혁신을 추진했다.
특히 SK하이닉스 인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전해진다. 최태원 회장은 SK하이닉스와 관련된 다양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할 수도 없다"며 "앞으로 계열사 일을 지주사로 물어보지도 가져오지도 말라"고 선을 그었다는 일화가 회자된다. 그룹이 성장을 위해 전혀 해보지 않던 사업에 진출하면서 오너일가와 몇몇 전문경영인에게 쏠려 있던 의사결정 권한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주사 SK㈜가 갖던 그룹 기능을 각사 이사회 및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전부 이관하면서 보다 독립적인 계열사 자율의 의사결정 체제를 갖췄다. 그룹의 주요경영 현안을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논의하고 각 계열사 이사회에서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그룹 내 최상위 의사결정 자문기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 핵심 계열사의 대표이사나 원로 경영진들이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하고 있는만큼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체 계열사들에 전파한다는 개념이다.
◇협의회서 참여 계열사 선정…최태원 회장 불참, 조대식 의장 지휘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에는 7개의 위원회가 있다. 그룹에 핵심적으로 필요한 기능과 성장 전략 등을 담았다. △전략위원회(조대식) △에너지·화학위원회(유정준) △ICT위원회(박성욱) △글로벌 성장위원회(박정호) △커뮤니케이션위원회(김준) △인재육성위원회(서진우) △SV위원회(이형희) 등이다.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전체 협의회를 조율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위원장들은 각각 맡고 있는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는 동시에 위원장으로서 해당분야의 전략을 세우고 조율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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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위원회는 그룹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 및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룹의 장기 성장기회를 발굴하고 투자를 검토 및 추진하는 동력을 구상한다. 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M&A) 등이 논의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에너지·화학 위원회는 SK그룹의 에너지 및 화학사업을, ICT위원회는 통신 및 ICT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 및 자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글로벌성장위원회는 SK그룹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구상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업무를 한다.
인재육성위원회는 SK그룹의 경영철학인 SKMS를 기반으로 미래 경영자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한다. 계열사 CEO 평가 등의 인사를 검토하고 각 사의 이사회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커뮤니케이션위원회는 대내외 이해관계자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는 업무를, SV위원회는 지속 가능한 행복을 만들고 SV 지표를 만들고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소속된 계열사는 16곳이다. SK㈜(장동현)·SK이노베이션(김준)·SK텔레콤(박정호)·SK E&S(유정준)·SK하이닉스(이석희)·SK케미칼(김철)·SK네트웍스(박상규)·SKC(이완재) 등이 참여한다. 가장 최근에는 LG그룹으로부터 인수한 SK실트론이 신규 멤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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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매출이나 자산 등이 고려가 되긴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특별한 기준으로 정해진 것도 없다. 수펙스추구협의회 구성원들이 모여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고만 알려졌다. 경영전략상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거나 성장동력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보는 계열사가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속한 계열사들은 모든 위원회에 소속되는 것이 아닌 각자 계열사에 맞거나 필요한 곳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예컨대 SK㈜의 경우 전략위원회와 커뮤니케이션위원회 등 총 세곳의 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각각 위원회에 소속된 계열사는 약 5~7곳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매달 모여 오찬을 함께 하고 약 3시간 가량의 토론을 진행한다. 이 자리에는 최태원 회장이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대식 의장을 중심으로 각 위원회가 안건별로 논의를 진행하며 최적의 대안을 도출한다. 추후 관련 내용을 종합해 조대식 의장이 최태원 회장에 전달한다고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라는 독특한 의사결정 협의기구를 보유하고 있다"며 "계열사 독립경영을 지원하는 동시에 그룹의 방향성을 선배 경영진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논의하며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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