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를 움직이는 사람들]'반도체 위기' 극복해 가는 이석희 사장⑧소통·공감 경영으로 불경기 이겨나가, 엔지니어 출신 CEO
윤필호 기자공개 2019-11-05 13:05:00
[편집자주]
재계 서열 3위에 이름을 올리는 SK그룹은 빠르게 몸집을 키우며 선두권 경쟁 대그룹을 압도하는 성장을 이루고 있다. 섬유사업에서 시작해 석유화학·텔레콤·반도체 등 전혀 다른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한 결과다. 상위권 대그룹 가운데 가장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 등 독특한 의사결정기구를 마련하며 효율적이고도 투명한 경영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더벨은 SK그룹을 움직이고 있는 조직과 인물들을 조명해 봤다.
이 기사는 2019년 10월 31일 11: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슈퍼사이클로 불린 반도체 호황기가 저물던 작년 말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반도체 경기가 악화되는 가운데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국내 반도체 산업 전반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소통과 공감의 경영을 앞세워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이 사장은 반도체 기술 경쟁을 이끌 전문가라는 점과 온화한 성품의 리더라는 점에서 전임인 박성욱 부회장과 닮았다. 그러면서도 위기 대응책은 빠르게 실행하는 과감성을 갖췄다. 최근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비롯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시대를 대비해 신기술 도입과 효율성 확보 등의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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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장은 박성욱 부회장이 직접 점찍은 정통 계승자로서 ‘엔지니어 CEO' 라인을 이어가고 있다. CEO에 오르기 전 학계에서 연구에 매진했고 SK하이닉스로 돌아온 이후에는 미래기술연구원장을 거쳐 D램개발사업부문장, 사업총괄(COO)을 역임하며 반도체 기술개발을 이끌었다. 의전을 최소화하고 직접 대화를 즐겨 현재 회사의 수평적 문화를 만든 박 부회장과 성품도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SK하이닉스 CEO에 취임하며 소통과 공감의 경영을 내세웠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생방송에 참여해 임직원 2000여명과 대화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철학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평소 직원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경청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사내에 상당수 팬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정년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세대나 직위, 직군 간의 수평적인 관계를 통한 자발적 의견 개진을 활성화하기 위해 올해 1월부터 기술사무직 전 직원의 호칭을 TL(Technical Leader, Talented Leader 등 중의적 의미)로 통일했다. 또 상대평가 제도를 내년부터 폐지하고, 대신 프로젝트별 상시 업무평가로 대체할 예정이다. 불필요한 경쟁은 줄이고 지속적으로 소통을 유도해 적기에 성과를 인정받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SK하이닉스 한 관계자는 "평소 후배 직원들과 대화에 열과 성을 다해 집중하고 대답한다"며 "담론도 부딪히면서 진화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서 소통·공감을 통한 건설적인 대립을 장려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의 소탈하지만 진지한 모습을 두고 사내에서는 '다정한 카리스마'라고 부른다. 이 같은 평가의 배경에는 그가 그동안 구축한 사업·학문적 성과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는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 시절 연구소에서 게이트옥사이드 연구를 담당했다. 연구를 바탕으로 반도체분야 최고 권위를 보유한 국제반도체소자학회(IEDM)에 논문을 제출했고 학술지에 실리는 성과를 냈다.
체계적인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고 결국 미국 스탠퍼드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이 사장은 박사 학위 취득 이후 인텔에 입사해 ‘인텔 기술상'(Intel Achievement Award)을 세 차례나 받아 업계의 전설로 남았다. 인텔 기술상은 인텔에서 매년 기술개발에 최고로 기여한 직원 한 명을 선정해 주는 상이다. 그는 10년간 인텔 근무 이후 학계로 발을 돌렸다. 2010년부터 카이스트(KAIST) 전자과 교수로 부임해 제자 육성에 전념했다.
그러다 2013년 친정인 SK하이닉스에 복귀했다. 그를 학계로 인도한 원천이 학문적 열정이라면, 학자의 길에서 다시 산업계로 이끌어낸 것은 반도체 산업에 기여하겠다는 책임감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카이스트에서 제자들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처음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로부터 제안이 왔을 때는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학교보다 더 큰 조직인 기업에서 빠르게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을 바꿔 결국 SK하이닉스로 컴백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주도
이 사장은 SK하이닉스가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호황기를 누리던 지난해 12월 CEO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신임 사장은 부임과 함께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반도체 경기가 하락세로 전환하면서 올해 실적도 잇따라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당장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각각 22.3%, 68.7% 감소했고, 2분기에도 38%, 89% 줄었다. 3분기 역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보다 40.1%, 92.7% 감소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수요 감소의 장기화에 맞서 지난 2008년 이후 11년만에 감산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천 M10 공장의 D램 생산 캐파 일부를 CIS(CMOS 이미지센서) 양산용으로 전환했고, 낸드플래시 부문도 2D 제품 캐파(CAPA)를 줄였다. 대규모 투자는 자제하고 대신 차세대 미세공정 기술에 기반한 고부가 제품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웠다.
실적은 부진하지만 기술 경쟁력은 착실히 확보했다. 이 사장은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128단 4D 낸드플래시 반도체 양산 성공을 이끌며 기술 리더십을 입증했다. 이 제품은 기존 삼성전자의 90단대 낸드에서 더욱 발전한 업계 최고의 적층이다. 낸드 셀 3600억개 이상이 집적된 1Tb(테라비트)를 구현해 저장 공간을 대폭 늘렸다. 또 지난 21일 3세대 10나노급(1z) 미세공정을 적용한 16기가비트(Gbit) DDR4 D램을 개발했다. 단일 칩 기준 업계 최대 용량인 16Gb를 구현했고, DDR4 규격의 최고 속도인 3200Mbps까지 안정적으로 지원한다. 당초 내년 개발 완료가 예정됐지만 이를 앞당겼다.
이 사장은 데이터의 폭발적인 증가로 비롯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SK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딥체인지(Deep change)와도 맞닿아 있다. SK그룹은 오는 2022년까지 전체 계열사 주요 정보기술(IT) 시스템의 80%를 클라우드로 전환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이보다 한발 앞서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 사장은 CEO 취임 이후 차세대 지능형 경영관리를 구축하기 위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메모리 데이터베이스 기반인 ‘S/4HANA'로 전환을 완료했다. 제품과 생산방식의 변화에 따라 시스템도 진화를 이끌어낸 셈이다. 새로운 시스템 환경에 필요한 직원을 선별해 교육했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처리할 데이터사이언스 임원 조직 구축에 공을 들였다.
이 사장은 송창록 부사장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담당으로 임명하고 혁신 업무를 맡겼다. 송 부사장은 이전까지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수율을 높이는 일을 담당했고, 현장의 시선에서 디지털 혁신을 주도할 적임자로 꼽혔다. 송 부사장은 CEO의 강력한 의지와 전폭적인 지원이 없으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절대 진행할 수 없다고 언급하며 이 사장의 강력한 의지를 소개한 바 있다. 시스템 구축 이후에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술을 선택해 필요한 분야에 적용하는 작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와 관련, 회사 한 관계자는 "최근 본연의 기술 개발 업무와 함께 빅데이터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며 "데이터를 통한 의사 결정과 제조 혁신을 위한 준비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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