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O 워치]현대제철, 안동일 부임 후 '재무통' 입지 좁아졌다과거 부흥 이끌던 강학성·송충식 퇴장, CFO 직급 '부사장→전무' 격하
김성진 기자공개 2019-12-19 08:29:00
이 기사는 2019년 12월 18일 16: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제철은 전통적으로 재무통들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회사다.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던 강학서 전 사장은 현대제철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고, 그 뒤를 이은 송충식 전 부사장 역시 유력한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거론됐었다. 현대제철은 이들 재무통의 활약으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거침없이 외형을 키웠다.그러나 최근 들어 재무통들의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다. 포스코 출신인 안동일 사장의 현대제철 대표이사 부임과 맞물려 발생한 현상이다. 안 사장 부임 직후 송 전 부사장이 임기 2년을 남긴 상태에서 퇴임을 결정한 데 따라 현대제철 부흥을 이끌었던 재무통들이 모두 퇴장했다. 동시에 송 전 부사장이 지난 2018년 재경본부장에서 변화추진실장으로 보직을 옮긴 이후 현대제철 재경본부장 자리는 기존 부사장에서 전무급으로 내려갔다.
◇M&A와 함께 열린 재무통 전성시대
현대제철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제철의 전신인 대한중공업공사는 1953년 세워져 전후 시설복구에 필요한 철강재를 생산했고, 이후 제강공장, 박판 압연공장 등을 연달아 세우며 국내 철강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2년에는 인천중공업으로 사명을 바꿨으며, 1970년에는 인천제철과 합병을 통해 국내 대표 철강사 중 하나로 성장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현대제철은 1978년 현대그룹에 편입되며 사업 확장을 이어갔다.
현대제철은 2000년대 들어 또 한 번의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다. 현대제철 스스로 '제 2의 창업'이라 일컬을 만큼 생산규모 확대, 신사업 확장 등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인수합병 전략이 두드러졌다. 현대제철은 2000년을 맞이한 직후부터 종합철강사로 도약하기 위해 몸집을 불려나갔다.
시작은 강원산업 인수였다. 현대제철은 2000년 3월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강원산업을 인수해 외형을 키웠다. 같은 해 12월에는 삼미특수강을 품에 안았고, 2004년에는 한보특수강을 인수하며 열연강판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M&A 전략은 2010년대 들어서도 이어졌다. 2013년 10월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을 합병했으며, 2014년 10월에는 자금력을 앞세워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며 특수강 부문에서 세아그룹과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2015년 6월에는 SPP율촌에너지를 인수했으며, 같은 해 7월에는 현대하이스코와 합병하며 자산규모 31조원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현대제철이 지난 20년간 M&A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산 규모를 불려나가는 동안 재무통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재무 담당자들은 인수 할 사업의 수익성과 시너지 효과를 검토하면서도, 인수 이후의 재무안전성을 관리하는데 역점을 뒀다. 현대제철이 20년에 걸쳐 꾸준히 기업들을 사들이고 합치는 동안 재무부서는 쉬지 않고 돈을 꾸고 갚는 등 세밀한 차입 전략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현대제철은 CFO 출신인 강학서 전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며 재무통 전성시대를 맞았다. 강 전 사장은 현대하이스코의 전신인 현대강관 출신으로 2007년을 제외하고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현대제철의 재무를 책임졌다. 강 전 사장은 현대제철의 고로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주요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굵직한 M&A를 이어가면서도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현대차그룹에서 CFO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상당히 이례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강 전 사장의 성과를 가늠해볼 수 있다.
강 전 사장은 재임 기간 동안 송 전 부사장과 손발을 맞췄다. 강 전 사장이 재경본부장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송 전 부사장이 새로운 재경본부장에 선임됐다. 구체적으로는 현대하이스코 냉연사업부와 합병 당시 강 전 사장은 송 전 재경본부장과 함께 2015년까지 차입금을 2조원 이상 줄인다는 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송 전 부사장은 재경본부장을 맡은 이듬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송 부사장은 1960년생으로 현대제철 경리부에 입사해 재정팀장, 재정·IR담당, 당진공장 원가관리팀장, 경리담당(이사), 경영관리실장(상무) 등을 거쳤다.
◇안 사장 부임과 맞물려 좁아진 재무통 입지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온 현대제철의 ‘재무통’ 전성시대는 사실상 올해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말 현대제철 재무 역사의 산 증인과도 같았던 강 전 사장이 지난해 우유철 전 부회장과 함께 퇴임했으며, 앞서 4월에는 송 전 부사장이 재경본부장에서 변화추진실장으로 보직을 변경하며 CFO 역할을 내려놨다.
무엇보다 올해 포스코 출신의 안동일 사장이 새로운 대표이사로 영입되면서 이러한 변화는 가속화했다. 올 3월 주주총회에서는 안 사장이 부임과 동시에 변화추진실장을 맡았던 송 전 부사장이 퇴임하며 그동안 현대제철 부흥을 이끌었던 재무통들이 모두 퇴장했다.
동시에 CFO의 직급은 한 단계 내려갔다. 지난해 4월 송 전 부사장 바로 뒤를 이어 새로운 재경본부장으로 김전갑 전무가 선임되며 기존 부사장급에서 전무급으로 직급이 바뀌었다. 김 전무가 같은 해 12월 중기계사업부장으로 보직을 변경하고 서강현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며 새로운 재경본부장에 선임돼 전무 직급이 유지됐다. 서 전무는 1968년 생으로 서울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차 회계관리실장 등을 역임했다.
현대제철이 '재무통'들을 모두 내보내고 '현장통'으로 불리는 안 사장을 영입한 배경으로는 품질 개선이 꼽힌다. 현대제철이 앞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주력한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안 사장은 포스코 재직 시절 광양제철소 설비담당 부소장, 광양제철소장, 포항제철소장 등을 역임하며 기술과 설비 분야에서는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현대제철이 고로 개수작업 준비에 착수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에 자리한 고로 3기의 개수공사에 대해 올해부터 준비에 돌입하고 오는 2030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개수란 고로 내 노후한 내화벽돌과 기타 부속설비를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는 통상적으로 15년가량 운영하면 개수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과거와 비교해 재무통의 영향력은 줄었지만 CFO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제철은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가 절감 등의 책임을 갖고 있는 CFO의 임무가 더욱 막중해졌다는 분석이다. 김점갑 전무가 재경본부장을 맡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현대차 출신의 서 전무를 재경본부장 자리에 앉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CFO의 역할이나 입지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상황이 좋지 않은 현재야말로 원가절감 등 CFO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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