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2월 18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원화 ESG채권 시장은 2018년 개화한 이후 지난해까지 그야말로 ‘폭풍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초라했다. 시장의 주체가 돼야 할 민간기업의 비중이 미미했다. 최근까지도 ESG채권 발행 기관과 물량 집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양뿐만 아니라 질도 썩 좋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 친환경 사업에 자금을 투자한 뒤 최근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를 차환하는 데에도 ESG채권의 조달자금이 쓰였다. 사후보고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국신용평가의 목표는 뚜렷하다.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고 원화 ESG채권 시장의 기준을 바로세우겠다고 한다. ESG채권을 발행하기 전부터 자금 사용목적이 적절한지, 조달 계획에 현실성이 있는지, 발행 이후 자금을 적절히 집행하는지, 집행한 자금을 목적에 맞게 운용하는지 만기까지 살펴볼 계획이다. 이에 따라 1등급에서부터 5등급까지 등급을 부여할 방침이다.
순기능도 눈에 그려진다. 높은 등급을 받고자 발행사들은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ESG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투자자는 투자한 돈이 취지에 맞게 쓰이는지 확인할 수 있어 안심할 수 있다. 정부도 혜택을 볼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ESG채권이 발행되면 기업이 환경 및 사회적 문제 해결에 힘써 정부는 공적자금 지출을 아끼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ESG채권 인증사업의 취지는 좋지만 이렇게 ‘빡빡한’ 평정을 어떤 기업이 원할까 싶어서다. 그동안 기업은 원화 ESG채권을 발행하기 전에만 외부기관에서 검증받으면 끝이었다. 사후검증을 받거나 자금운용 내역을 공개할 필요가 없었다. 발행 목적도 ‘사상 첫 발행, 친환경 사업 자금조달’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ESG채권의 전 주기를 추적하는 것을 민간기업이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한국신용평가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의 양적 성장만을 위해 인증 기준을 낮출 수 없으니 정부가 시장 성장을 위한 유인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특히 채권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 등의 참여를 강조한다. 국민연금이 뚜렷한 원칙을 세워 ESG채권 투자를 본격화하면 다른 기관투자자들도 따라 나서면서 자연스레 원화 ESG채권 시장의 양과 질이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증사업을 통해 원화 ESG채권 시장의 기준을 세우겠다는 한국신용평가의 도전은 사회적 가치 측면이나, 새 시장 개척이라는 측면에서 유의미해보인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까지 갈 길이 멀다. 투자자의 인지도는 낮고 기업의 진정성은 불투명하다. 정부의 유인책이 나오기까지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신용평가의 도전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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