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3월 09일 16: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홈쇼핑은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높은 재무안정성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기업의 곳간을 얼마나 탄탄히 유지하느냐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특히 인수·합병(M&A)을 통해 외형 확장을 이뤄온 현대백화점그룹 입장에서는 사들일 여력, 즉 투자를 위한 실탄을 보유한 계열사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홈쇼핑은 그룹의 현금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오랜 기간 무차입 기조를 유지해왔다. 우수한 영업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연간 남아도는 돈만 1000억원 안팎에 달한다. 과거 5년간 재무제표를 살펴봐도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홈쇼핑 사업 자체가 투자를 많이 필요로 하는 사업이 아닌 데다 홈쇼핑 사업에서만 매년 1000억원이 넘는 이익을 매년 안정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고객센터와 물류센터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점포를 설치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 해외사업도 지난해 호주 홈쇼핑 사업에 뛰어들긴 했지만 그간 해외 시장에 이렇다 할 대규모 투자를 해오지도 않았다.


그간 필요한 경우에도 차입보다는 보유 현금을 활용해왔다. 2012년 패션업체 한섬 인수 이후 2017년 초까지는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현금을 쌓는 데 주력했다. 현금성자산(단기금융자산 포함)만 1조원에 육박할 정도였다. 2016년 현금성자산은 8930억원까지 늘었다.

2018년 말에는 현대L&C 인수 주체로 현대홈쇼핑이 나섰다. 현대백화점그룹 차원에서 리빙·인테리어 사업을 3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키우며 건자재 업체인 현대L&C를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다. 당시 현대백화점은 면세사업에 투자를 앞두고 있었고 현대리바트 최대주주인 현대그린푸드 역시 IT사업부 분할 비용과 공장 증축비 등으로 현금 여력이 충분치 않았다.

결국 현대L&C는 현금 곳간이 가장 넉넉한 현대홈쇼핑 품에 안길 수밖에 없었다. 현대홈쇼핑은 2018년 12월 현대L&C 지분 100%를 3666억원에 인수했다. 투자금 전액은 보유 현금으로 충당했다.

현대홈쇼핑은 2018년을 기점으로 안정적인 재무 기조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투자에 지속적으로 나서면서다.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현대L&C 인수에 더해 자회사 현대렌탈케어에 1000억원을 투자했고 호주 홈쇼핑 자회사 설립에도 360억원을 현금 출자했다.

그럼에도 현대홈쇼핑은 매우 우수한 재무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총차입금은 2531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00억원 넘게 늘긴 했지만, 순차입금은 여전히 마이너스(-) 2125억원을 기록하며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현금성 자산도 아직 5000억원 가까이 쌓여있는 상태다.

이렇게 현대홈쇼핑 재무 기조의 변화를 가져온 이는 황중률 현대홈쇼핑 경영지원담당(상무보)이다. 황 상무가 2018년 인사에서 경영지원담당 임원으로 승진해 CFO를 맡은 시점과 현대홈쇼핑이 보수적 투자 성향을 일정 부분 내려놓은 시점과 맞닿아 있다. 업계에선 그룹의 M&A 투자 기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룹 기조에 맞게 자금을 조달하고 지원해주는 역할을 황 상무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황 상무는 현대백화점 출신으로 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회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현대백화점 신촌점 경리 총괄을 맡는 등 현대백화점 재무라인으로 활약해오다 2015년부터 현대홈쇼핑으로 자리를 옮겨 재경팀장을 맡았다. 지난해부터는 현대홈쇼핑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며 지주사 CFO 역할을 맡고 있다.

향후 황 상무의 전략은 지금까지의 기조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홈쇼핑 사업의 안정적인 현금 창출 능력을 바탕으로 신사업 부문인 현대렌탈케어와 현대L&C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룹 차원에서 신규 M&A 나설 가능성 역시 높은 상태로 현대L&C 때처럼 인수 주체로 나설 가능성 또한 열려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사업을 가져간다면 무차입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라며 “현대백화점그룹이 다시 M&A 매물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현대홈쇼핑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